추석산행 - 백운대
Posted 2012. 10. 2.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I'm a pedestrian
신혼시절부터 이십 년이 넘도록 설이나 추석 연휴는 본가를 1박2일에 처가는 1박2일이나
당일에 갔다 오는 게 정해진 코스였다. 십여 년 전부터 남들처럼 애들 데리고 오붓한 여행을
가고도 싶었지만, 양가 어른들이 계시고, 나나 로즈마리나 형제들이 반은 외국에 나가 있어
구조적으로 우리가 빠지면 그림이 안 되는 상황이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이번
추석에 처음으로 추석 아침에 교회를 갔다가 둘이 북한산을 찾았다.
도선사 앞에 차를 대고 백운대를 향해 오르기 시작한 게 2시. 버스 정류장에서 여기까지 2km
정도 걸어 올라오는 이들이 많은데, 우린 도선사에서 바로 출발하니 백운대까지는 2.4km에 불과해
오후에 다녀오기 딱 좋은 코스다. 물론 바위가 많고 철줄을 붙잡고 올라가야 하는 만만치 않은 코스들이
이어지지만, 그래도 거리상으로 백운대에 오르기엔 가장 짧은 코스일 것 같았다. 정릉이나 4.19
묘소에서 올라 이 길로 내려오곤 했는데, 오늘은 거꾸로 올라갔다 바로 내려올 참이었다.
북한산길엔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는데, 성미 급한 녀석들은 그새를 못 참고 나무를 물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대로 물들면 만산홍엽(滿山紅葉)이 따로 없을 것이다. 더 급한 녀석들은
가지에 붙어 있지 않고 지가 무슨 꽃이라도 되는 줄 아는 양 낙하해 개울가 바닥에서 유유자적하고
있었다. 가을이 조금씩 깊어지는 것 같긴 하다.
바위가 많은 북한산은 돌길이 많은 게 관악산 비슷하다. 큰 돌로 등산로와 계단을 잘 만들어
놓은 게 등산객이 많은 서울 남북의 대표적인 산들의 특징인가보다. 길이 무난해서인지 로즈마리도
스틱 하나 짚으면서 쉬엄쉬엄 잘 올라간다. 백운대까지는 힘들 게고, 중간 어디쯤에서 쉬다 내려올
참이었는데, 컨디션이 좋은지 계속 가 보잔다. Why not?
어제부터 추석 음식을 계속 먹어대서 점심은 스킵할 수 있었지만, 본가에서 싸준 송편과
포도로 점심을 삼았다. 로즈마리는 최근에 먹은 송편들 가운데 제일 맛있다는데, 아무려면
집을 벗어나 산에서 먹는 게니 무얼 먹어도 맛이 기가 막혔을 것이다.^^
북산산성 위문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철 로프를 붙잡고 올라가야 하는 큰 바위산이
연속해서 이어진다. 등산 장갑을 껴야 하는 구간인데, 우린 둘 다 맨손이다. 처음부터
여길 올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삼 년 전쯤 대동문을 지나 여길 오를 땐 바람도 제법
불어 은근히 겁이 났던 기억이 있는데, 오늘은 바람도 없는 게 맨손으로 오르는 것도
그리 어렵진 않았다.
잠시 뒤를 내려다보니 추석 오후라 그런지 등산객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우리도
그렇지만, 추석 명절 오후를 편히 쉬지 않고 일부러 땀을 흘리고 조금은 힘들게 산을
오르내리는 이들이 대단해 보였다. 멀리 보이는 멋진 봉우리가 만경대이다.
이제 마지막 고비이자 하이라이트 격인 인수봉을 옆으로 보면서 올라가는 구간이
남았다. 불현듯 7월에 해인이와 함께 올라갔던 자이언 캐년(Zion Canyon)의 아찔했던
봉우리 앤젤스 랜딩(Angels Landing) 생각이 났다. 백운대는 적당히 짜릿한 느낌을 주면서
김장감을 늦추지 않게 하는 게 거기보다 쪼~끔 덜 위험한 코스였다.
저 위로 정상이 보이면서 바위에 철봉을 박고 철줄을 연결해 지그재그로 길게 낸 길을
내려오는 이들을 중간중간 기다려 주면서 올라가니까 힘든 줄도 모르겠고, 함께하니까
등정의 즐거움이 배가되는 것 같다. 나보다 비위가 좋은 로즈마리는 이상하게 이런 난코스
어드벤처를 만나면 더 힘을 내는 것 같다.
드.디.어. 흰구름 바위산(白雲臺)에 올랐다. 836미터로, 뒤로 보이는 인수봉(仁壽峰,
810m), 만경대(萬景臺, 800m)와 함께 북한산의 또 다른 이름 삼각산(三角山)을 이루는
세 봉우리 중 가장 높은 북한산의 주봉(主峰)이다. 다른 때 와도 좋았겠지만, 추석 오후에
로즈마리와 함께 올라온 기쁨이 컸다.
2시에 도선사에서 출발해 중간중간 쉬면서 올라왔는데도 4시밖에 안 됐다. 아마 혼자서
쉬지 않고 올라오면 한 시간 조금 더 걸릴 것이다. 인수봉이나 다른 봉우리들을 배경으로
서로들 인증샷을 찍어주는 즐거운 분위기가 정상에 가득했다.
등정의 기쁨을 만끽하던 이들은 뒤에 올라오는 이들을 위해 정상을 양보하고 바로 옆
봉우리로 옮겨 배낭을 내려놓고 발을 쭉 뻗고 앉거나 아예 큰 대 자로 누워 북한산의 멋진
산 봉우리들과 가을 하늘을 만끽한다. 조금 힘이 들어서 그렇지, 이만한 신선노름도
없을 것이다.
백운대 바로 밑에는 꽤 넓직하고 평평한 바위공간이 있어 산에 오른 이들이 삼삼오오
앉아서 도시락을 먹거나 커피 한 잔 하면서 끝내주는 경치를 감상하면서 오후의 피로를
바람에 실어보내고 있었다. 아직 가을산에 단풍이 물들려면 조금 더 있어야 하지만 산을
찾는 이들의 옷차림은 벌써 깊은 가을을 몰고 왔다.
북한산은 옆으로 이어지는 도봉산 풍경도 근사하지만, 인수봉, 만경대 등 주변 어느
봉우리 하나 못 생긴 게 없었는데, 북한산 봉우리들만으로도 절경이 따로 없었다. 집앞
검단산, 예봉산, 운길산이 갖고 있지 못하는 빼어난 산세(山勢)는 눈을 즐겁게 할 뿐 아니라
씻겨주는 것 같기도 했다.
도선사에 다시 내려오니 6시가 됐다. 주차구간은 이미 꽉 차 있어서 언덕배기 빈 공간에
차를 대고 갔는데, 주차위반 경고장이 붙어 있다. 보통 때 같으면 5분 뒤에 과태료 5만원을
물리는 스티커를 붙여놨겠지만, 명절이라 괜찮겠지 하고 믿음으로(?) 올라갔는데, 고맙게도
단순 경고로 끝나 있었다. 한가위 인심이 느껴졌다.
당일에 갔다 오는 게 정해진 코스였다. 십여 년 전부터 남들처럼 애들 데리고 오붓한 여행을
가고도 싶었지만, 양가 어른들이 계시고, 나나 로즈마리나 형제들이 반은 외국에 나가 있어
구조적으로 우리가 빠지면 그림이 안 되는 상황이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이번
추석에 처음으로 추석 아침에 교회를 갔다가 둘이 북한산을 찾았다.
도선사 앞에 차를 대고 백운대를 향해 오르기 시작한 게 2시. 버스 정류장에서 여기까지 2km
정도 걸어 올라오는 이들이 많은데, 우린 도선사에서 바로 출발하니 백운대까지는 2.4km에 불과해
오후에 다녀오기 딱 좋은 코스다. 물론 바위가 많고 철줄을 붙잡고 올라가야 하는 만만치 않은 코스들이
이어지지만, 그래도 거리상으로 백운대에 오르기엔 가장 짧은 코스일 것 같았다. 정릉이나 4.19
묘소에서 올라 이 길로 내려오곤 했는데, 오늘은 거꾸로 올라갔다 바로 내려올 참이었다.
북한산길엔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는데, 성미 급한 녀석들은 그새를 못 참고 나무를 물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대로 물들면 만산홍엽(滿山紅葉)이 따로 없을 것이다. 더 급한 녀석들은
가지에 붙어 있지 않고 지가 무슨 꽃이라도 되는 줄 아는 양 낙하해 개울가 바닥에서 유유자적하고
있었다. 가을이 조금씩 깊어지는 것 같긴 하다.
바위가 많은 북한산은 돌길이 많은 게 관악산 비슷하다. 큰 돌로 등산로와 계단을 잘 만들어
놓은 게 등산객이 많은 서울 남북의 대표적인 산들의 특징인가보다. 길이 무난해서인지 로즈마리도
스틱 하나 짚으면서 쉬엄쉬엄 잘 올라간다. 백운대까지는 힘들 게고, 중간 어디쯤에서 쉬다 내려올
참이었는데, 컨디션이 좋은지 계속 가 보잔다. Why not?
어제부터 추석 음식을 계속 먹어대서 점심은 스킵할 수 있었지만, 본가에서 싸준 송편과
포도로 점심을 삼았다. 로즈마리는 최근에 먹은 송편들 가운데 제일 맛있다는데, 아무려면
집을 벗어나 산에서 먹는 게니 무얼 먹어도 맛이 기가 막혔을 것이다.^^
북산산성 위문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철 로프를 붙잡고 올라가야 하는 큰 바위산이
연속해서 이어진다. 등산 장갑을 껴야 하는 구간인데, 우린 둘 다 맨손이다. 처음부터
여길 올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삼 년 전쯤 대동문을 지나 여길 오를 땐 바람도 제법
불어 은근히 겁이 났던 기억이 있는데, 오늘은 바람도 없는 게 맨손으로 오르는 것도
그리 어렵진 않았다.
잠시 뒤를 내려다보니 추석 오후라 그런지 등산객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우리도
그렇지만, 추석 명절 오후를 편히 쉬지 않고 일부러 땀을 흘리고 조금은 힘들게 산을
오르내리는 이들이 대단해 보였다. 멀리 보이는 멋진 봉우리가 만경대이다.
이제 마지막 고비이자 하이라이트 격인 인수봉을 옆으로 보면서 올라가는 구간이
남았다. 불현듯 7월에 해인이와 함께 올라갔던 자이언 캐년(Zion Canyon)의 아찔했던
봉우리 앤젤스 랜딩(Angels Landing) 생각이 났다. 백운대는 적당히 짜릿한 느낌을 주면서
김장감을 늦추지 않게 하는 게 거기보다 쪼~끔 덜 위험한 코스였다.
저 위로 정상이 보이면서 바위에 철봉을 박고 철줄을 연결해 지그재그로 길게 낸 길을
내려오는 이들을 중간중간 기다려 주면서 올라가니까 힘든 줄도 모르겠고, 함께하니까
등정의 즐거움이 배가되는 것 같다. 나보다 비위가 좋은 로즈마리는 이상하게 이런 난코스
어드벤처를 만나면 더 힘을 내는 것 같다.
드.디.어. 흰구름 바위산(白雲臺)에 올랐다. 836미터로, 뒤로 보이는 인수봉(仁壽峰,
810m), 만경대(萬景臺, 800m)와 함께 북한산의 또 다른 이름 삼각산(三角山)을 이루는
세 봉우리 중 가장 높은 북한산의 주봉(主峰)이다. 다른 때 와도 좋았겠지만, 추석 오후에
로즈마리와 함께 올라온 기쁨이 컸다.
2시에 도선사에서 출발해 중간중간 쉬면서 올라왔는데도 4시밖에 안 됐다. 아마 혼자서
쉬지 않고 올라오면 한 시간 조금 더 걸릴 것이다. 인수봉이나 다른 봉우리들을 배경으로
서로들 인증샷을 찍어주는 즐거운 분위기가 정상에 가득했다.
등정의 기쁨을 만끽하던 이들은 뒤에 올라오는 이들을 위해 정상을 양보하고 바로 옆
봉우리로 옮겨 배낭을 내려놓고 발을 쭉 뻗고 앉거나 아예 큰 대 자로 누워 북한산의 멋진
산 봉우리들과 가을 하늘을 만끽한다. 조금 힘이 들어서 그렇지, 이만한 신선노름도
없을 것이다.
백운대 바로 밑에는 꽤 넓직하고 평평한 바위공간이 있어 산에 오른 이들이 삼삼오오
앉아서 도시락을 먹거나 커피 한 잔 하면서 끝내주는 경치를 감상하면서 오후의 피로를
바람에 실어보내고 있었다. 아직 가을산에 단풍이 물들려면 조금 더 있어야 하지만 산을
찾는 이들의 옷차림은 벌써 깊은 가을을 몰고 왔다.
북한산은 옆으로 이어지는 도봉산 풍경도 근사하지만, 인수봉, 만경대 등 주변 어느
봉우리 하나 못 생긴 게 없었는데, 북한산 봉우리들만으로도 절경이 따로 없었다. 집앞
검단산, 예봉산, 운길산이 갖고 있지 못하는 빼어난 산세(山勢)는 눈을 즐겁게 할 뿐 아니라
씻겨주는 것 같기도 했다.
도선사에 다시 내려오니 6시가 됐다. 주차구간은 이미 꽉 차 있어서 언덕배기 빈 공간에
차를 대고 갔는데, 주차위반 경고장이 붙어 있다. 보통 때 같으면 5분 뒤에 과태료 5만원을
물리는 스티커를 붙여놨겠지만, 명절이라 괜찮겠지 하고 믿음으로(?) 올라갔는데, 고맙게도
단순 경고로 끝나 있었다. 한가위 인심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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