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모양 보도블럭
Posted 2014. 3. 1.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
계원대학에서 한 블럭 내려오면 롯데마트와 농수산물 시장(바로 뒤는 평촌신도시로 이어진다) 등이 있는 넓다란 계원대 사거리가 나온다. 이 정도 동네 스펙이면 상권이 꽤나 활발하고 다양한 문화 현상들이 유입될 것 같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위를 관통하는 외곽순환도로의 육중하고 위압적인 위세에 눌려 조용한 동네가 됐다.
게다가 이 지역의 외곽순환도로는 높은 교각 위에 왕복 8차선으로 넓게 나있는데다가 양쪽으로 나들목이 따로 연결돼 있어 거의 하늘을 가릴 정도다. 그러다보니 식당을 가거나 마트 갈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별로 안 걷게 되는데, 이런 약간 황량한 풍경을 보완하기 위해 어느 거리 못지 않게 디자인에 신경쓴 흔적이 눈에 띈다.
양쪽 길 가운데 그래도 상권이 형성된 곳은 보행도로 폭이 그나마 좁은 마트 건너편인데, 폭이 꽤 넓은 롯데마트 앞 보행로는 옆에 상점도 거의 없어 10여년 전 처음 거리를 조성할 때부터 보도블럭부터 벤치와 거리 안내판 등에 이르기까지 디자인 컨셉을 적용해 제법 볼만하다. 만들긴 잘 만들었지만 유동인구가 적고, 그쪽으로는 잘 안 걷게 되는 게 문제긴 하지만.^^
중간에 차도가 있고 육교가 있긴 하지만, 길이가 백 미터가 넘고, 폭도 십 미터가 넘어 거리 디자인하기 딱 좋은 곳답게 보도 블럭도 다른 곳과는 달리 시원시원하고 개성 있게 놓았다. 그 중에 벤치 두 개 앞에는 지름이 한 5미터는 되는 원형 파이 그래프 모양을 만들어 놨는데, 파이마다 색을 입혀서 눈길을 끌었다.
저 벤치에 앉은 사람들은 이 파이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지난 달 부문별 지출액, 월별 마트 방문일수 등 이런저런 상상이 가능하겠지만 아마도 그 중에서 가장 달콤한 것은 조각마다 토핑을 달리해 매우 그럴싸하게 만든 초대형 피자를 보는 기분 아닐까.^^ 그렇다면 저 벤치는 한쪽 고르기 전에 어떤 토핑을 얹은 조각이 더 맛이 좋을지 곰곰 살펴보면서 즐거운 고민을 하게 만드는 벤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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