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을 다니며 남한산성을 읽다
Posted 2014. 10. 29. 00:00, Filed under: I'm journaling/숨어있는책, 눈에띄는책
올여름 가을 주말은 남한산성 거니는 재미로 보냈고 보내고 있다. 집에서 차로 10여 분 가서 한 시간 남짓 산을 오르면 손쉽게 닿을 수 있는,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는데도 그 동안 등산 재미에 밀려 대접이 소홀했다. 산성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꽂이에 꽂아뒀던 김훈의 동명 소설책도 다시 꺼내 보게 됐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이리라.
2001년에 <칼의 노래>로 공전의 히트를 치고, 2007년에 나온 이 책 역시 한동안 인구에 회자되면서 많은 화제를 낳았는데, 나오자마자 사 놓고는 한 번에 못 읽고 그때 그때 무슨 성경책 읽듯이 띄엄띄엄 읽다 말았다. <흑산> 때도 그랬지만, 김훈의 문장은 자못 화려하면서도 페이지를 빨리 넘기지 못하게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왜, 다 안 읽어도 배가 부른 그런 거 있잖은가.^^
이번엔 달랐다. 벌봉과 한봉, 봉암성 등 산성에서 그 동안 잘 안 다니던 외성(外城)을 걸으면서 산성의 속살을 호흡하고 피부로 느끼면서 책도 이전과는 느낌이 다르게 다가왔다. 책도 속내를 보여 주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책은 불 구경하듯 급하게 달리지 않고 담담히 읽혀졌다.
4백년 전 산성의 이곳저곳 풍경들이 마중나왔고, 겨울철 47일간 견디다가 끝내 항복한 임금을 위시해 조정 대신들과 민초들의 말과 삶이 수수하게 수를 놓았다. 김훈은 늘 그렇듯이 말을 함부로 내뱉지 않고 아끼면서도 리듬을 잃지 않고 유려(流麗)한 언사(言辭)로 산성 상황을 차분하게 중계한다. 김훈은 잘 썼고, 학고재는 단아하게 잘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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