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트렉
Posted 2015. 3. 27. 00:00, Filed under: I'm journaling/숨어있는책, 눈에띄는책
알렉상드로와 소냐 푸생(Alexandre & Sonia Poussin)이란 약간 정신 나간^^ 프랑스 신혼부부(파리정치대학과 소르본에서 각각 정치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사회학 석사학위를 받은 인텔리들이다)는 2001년 1월 1일부터 3년여에 걸쳐 있는 그대로의 아프리카를 체험하기 위해 최남단 희망봉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 도보로 여행을 떠난다. <아프리카 트렉 Africa Trek>은 그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킬리만자로 정상까지 약 1년 6개월에 걸친 7천km 노정(路程)을 기록한 570면 두께의 어마무시한 책이다.
각자 물 몇 리터 병과 촬영장비 외엔 아주 최소한의 짐만 넣은 8kg 배낭을 지고 폴대 하나 짚고 아프리카를 남에서 북으로 종단하려는 이들의 트레킹은 누가 봐도 미친 짓처럼 보이는데, 결국 해 냈다. 때론 40도를 넘어 50도에 육박하는 살인적인 더위와 한밤엔 영하로 내려가는 극과 극의 날씨부터, 하루에 3, 40km씩 걷느라 양말과 신발을 몇 번씩 버리고 갈아 신어야 하는 중노동 도보여행을 이 신혼부부는 왜 감행했을까.
발에 난 상처는 물론이고, 벌레에 물리고 결국 말라리아까지 걸리면서 위험한 지경에도 이르지만, 최초 인류의 발자취를 따라 동아프리카대지구대를 걸으면서 아프리카 사람들과 자연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었던 동기가 이 젊은 부부블 부추겼고, 도보여행의 원칙을 지키느라 후원을 받지 않으면서도 중간중간 잠자리와 먹을거리, 휴식과 대화를 제공하며 때론 함께 걸어주기도 한 흑백의 아프리카 사람들은 끊이지 않는 동력이 돼주었다.
워낙 긴 여정인지라 등장인물부터 풍경까지 다양하고 다채로운데, 보통 사람들로선 도무지 엄두가 안 나는 이 험준한 도보여행기는 트레킹의 ㅌ자도 꺼내지 못하게 만드는 끔찍한 책이 아니다. 푸생(프랑스어로 병아리란 뜻^^) 부부의 건강한 젊음과 발랄한 호기심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려한 글솜씨는 트레킹을 아무나 할 수 없는 대단하고 어려운 게 아니라 누구나 시도할 수 있는 살아 꿈틀거리는 멋진 일이라면서 독자들을 흡인한다.
컬러 화보 16면에 생생한 컬러 사진 45장이 함께 실려 있어 이들이 느꼈을 감동을 전달해 준다. 읽으면서 이런저런 인상적인 표현들에 저절로 밑줄이 그어졌는데, 그 중 도보여행자의 애환을 잘 그려낸 몇 대목만 옮겨본다.
15km를 가기 전에 첫 휴식을 취하는 건 어림없는 일이었다. 점심을 먹기 전에 20km를 걸으려고 애쓰고, 30km 전에는 쉬고 싶은 유혹을 뿌리쳤다. 만보기는 우리의 검열관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동그라미가 여럿 달린 멋진 숫자로 우리에게 보답할 줄도 알았다. (157면, 레소토)
가난한 도보여행자가 된 이후로 우리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도 풍요로워졌다. 걷는다는 건 도발하는 것이다. 사물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요, 공상의 도랑을 따라가며 수많은 걸 자유롭게 수확하는 것이며, 늘 새로운 경이를 체험하는 것이다. 도보여행 만세! (242면, 남아공)
언제나 너무 무거운 배낭 속에, 언제나 너무 약한 발의 고통 속에 1km는 결코 쉽지 않다. 12분 이하로는 결코 안 된다. 우리는 그저 끈질길 뿐이다. 걷는 건 우리가 아니다. 걸음이 우리 안에서 걷는 것이다. "나는 걷는다. 고로 존재한다." 이것이 우리의 코기토(
'I'm journaling > 숨어있는책, 눈에띄는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30년 전 책 두 권 (2) | 2015.07.31 |
---|---|
함석헌과 김교신 (2) | 2015.04.13 |
Zealot 젤롯 (4) | 2015.03.09 |
일상 상담 (0) | 2015.02.11 |
교회 안 나가는 가나안 성도 (2) | 2015.0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