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튼대학의 맨홀 뚜껑들
Posted 2015. 8. 15.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KOSTA USA
이 블로그의 타이틀이기도 한 Pedestrian으로 살다 보니 주위 풍경과 하늘을 바라볼 때도 있지만, 종종 우두커니 땅바닥을 내려다 보며 걸을 때가 있다. 바닥엔 늘 그렇듯이 별 거 없는데, 몇 달 전엔 사무실 근처를 걷다가 바닥에 이런저런 맨홀 뚜껑들이 적잖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보게 돼 문득 신기한 생각이 들어 사진을 찍어 두었다.
7월 첫째주 시카고 코스타가 열린 휘튼대학에서 오후 세미나를 하기 위해 숙소인 에반스 홀에서 빌리 그래함 센터까지 5분 정도 걸어가는데,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인지라 맨홀 뚜껑이 몇 개 눈에 띄었다. 마침 글쓰기 세미나에 들어온 친구들에게 일상에서 관찰의 중요성을 말하려던 차여서 세미나 마치고 식당까지 걸어가면서 땅바닥에 맨홀 뚜껑이 몇 종류, 몇 개쯤 있는지 살펴보라는 뜬금없는 과제를 내주기도 했다.
그 날 내가 휘튼대학 교정에서 본 맨홀 뚜껑은 내가 사는 동네와 별다르지 않았다. 여기도 전기, 수도, 하수도, 정화조 등 사람 사는 데선 필수적인 시설들이 땅 아래 파이프와 전선 등으로 연결돼 있었고, 그걸 알려주는 맨홀 뚜껑들이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었다. 모든 게 영어로 돼 있다는 것만 빼곤 모양도 우리와 별다르진 않았다.
Storm이라고 써 있는 뚜껑이 눈에 띄었는데, 폭풍우가 몰아칠 때 열어 사용하는 모양인데, 구체적인 용도는 딱히 짐작이 안 됐다. 잔디와 콘크리트 보도 사이에 놓인 뚜껑은 어느 이름 없는 나라의 국기 같아 보이기도 했다. 휘튼에서 본 맨홀 뚜껑들은 대체로 설치한 지 제법 돼 보였는데, 수년 또는 수십년 간 수많은 학생들이 밟고 지나간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잠깐 사이에 너댓 개를 발견하면서 좀 더 공을 들여 열 개쯤 찾아야겠다 싶었지만, 이내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겠다 싶어졌다. 괜히 뭔가를 잃어버리고 찾으려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고, 멀리 남의 나라에 와서 볼 게 도처에 널려 있는데 굳이 이런 짓까지 할 필요는 없겠단 생각이 들어 그 다음엔 늘 그랬듯이 나무들과 눈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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