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 보니 함께였다
Posted 2015. 9. 19. 00:00, Filed under: I'm journaling/숨어있는책, 눈에띄는책지난주에 사무실로 신대원에 다니는 청년 셋이 방문을 했다. 나를 찾아온 건 아니고, 함께 일하는 고직한 선교사를 만나러 온 건데, 내게 인사를 시켰고, 점심식사를 함께하게 됐다. 요즘 신대원생들의 열악한 형편을 주고 받던 중 그 중 문종성(35)이란 친구가 7년 동안 자전거로 112개국을 다녔다고 하면서 책도 썼다고 하길래, 아 그러세요 하면서 속으로 영락없는 요즘 젊은 친구구나 하고 넘어갔다.
며칠 뒤에 문득 제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작년에 두란노에서 그 친구 책을 한 권 보냈었지 하는 생각이 났고, 책꽂이 앞에 쌓아둔 책꾸러미들 사이에서 꺼내 들었다<떠나 보니 함께였다>란 타이틀 아래 "예수와 함께 떠난 자전거 광야 여행"이란 부제가 붙어 있었다. 아마 책이 왔을 땐 상투적인 부제 앞 문구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안 읽고 내버려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팔자 좋고 호기로운 요즘 젊은이들이 세계를 다니면서 사진 찍고 감상적인 여행기를 남긴 그렇고 그런 책이겠거니 했는데, 그런 구석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의식이 있는 친구였다. 자전거로 하는 힘든 여행 탓이긴 했지만 화려하고 신나는 여행 풍경을 떠벌이기보다는 광야와 같은 세상을 체험하면서 경험한 환대와 어려움, 그리고 담담하게 세계 곳곳에서 사역하는 한인 선교사들의 형편과 상황을 담아내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국문과를 나와서인지 문장이 괜찮았다. 감정이 과하지도 넘치지도 않아 독자들을 힘들게 하거나 지루하게 만들지 않고 소박하게 이끌어 가는 힘이 있었다. 사실 7년이란 짧지 않은 기간에 100개국이 넘는 나라를, 그것도 자전거에 짐 싣고 다니는 중노동과 악전고투는 주말 등산과 가벼운 트레킹 정도에 가끔 콧바람 쐬는 여행을 하는 독자 입장에선 경이감을 느낄만했는데 미처 못 알아봤던 것 같다.
알라딘에서 검색해 보니 미국, 쿠바, 멕시코, 산티아고, 동아프리카 등을 바이크로 여행한 책도 대여섯 권 낸 나름 이 방면의 중견 저자인데^^, 이 또한 몰라봤다. 그 책들을 사서 읽진 않겠지만, 서점에 갈 때 들춰보거나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할 정도는 충분히 되는 젊은 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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