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꼭 닫아야 할까
Posted 2016. 1. 17.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아서라, 말아라
새해부터 교회에서 엉뚱한 일을 도모하는 것 같아 주초에 교회 게시판에 의견을 올렸다.
교회가 슬슬 커 가면서 요 근래 부쩍 숫자를 들이대기 시작하고, 최선의 예배, 진정성 있는
예배 운운하면서 대형교회들이 교인들 다잡을 때 보이는 작태를 연출하기 시작하는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조치 중 예배 15분 전부터 기도회를 한다는 것도 조금 딱해 보이지만, 일단 예배가
시작되면 단계적으로 문을 닫겠다(출입을 제한하겠다)는 희한한 조치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며칠 뒤 운영위원회 명의로 답글이 달렸는데, 논점이 달라 함께 소개할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
다들 앓게 되는 성장통으로 딛고 일어서면 좋을 텐데, 고집이 있어서리..
그러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부터 예배에 드라이브가 걸리는 듯하더니, 예배에 지각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예배가 시작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점진적으로 문을 닫겠노라는 깜짝 놀랄만한 메시지가
강단에서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혹시 잘못 들은 건가 했는데, 돌아가는 형국을 보니
맞는 모양입니다.
사실 예배가 시작됐는데 늦게 입장하는 이들로 인해 예배 분위기가 다소 산만해지는
순간을 가끔 경험하는데, 강단에서 예배를 진행하는 분들에겐 더 크게 신경 쓰일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이런 이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제시간에 와서 예배에 열중하는 대부분의
교우들을 보호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란 게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예배당 문을 닫을 생각을
하는 건 본말이 전도된 이상한 조치라는 느낌이 듭니다.
대여섯 해 전 나들목에 처음 와서 예배 시작하기 일이십 분간 회중석에서 느껴지는 활기
(vitality)에 조금 놀라고 약간의 문화충격을 받던 때가 생각납니다. 커피컵을 들이키며 조금
시끄럽긴 했어도 자유롭게 주위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고 수다를 떨다가 예배가 시작되면
집중력을 되찾고 예배모드로 전환하는 게 참 보기 좋았습니다.
그런데 예배에 늦으면 문을 닫겠다는 말을 들으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싶습니다.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늦게 오는 이들이 잘못하는 건가 의아해집니다. 젊은 부모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겨우 주차하고 주일학교에 인계하고 입장하기까지 어떤 동선을 거치는지
충분히 고려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또 불신자들을 포함해 찾는이들과 함께하는 예배를 표방하면서 지각하는 이들에게 문을
닫는 게 어떻게 비춰질지 염려되기도 합니다. 환대(hospitality)와 희열(hilarity)의 공동체라면
어떻게 이런 엉뚱하고 무리한 수를 생각할 수 있을까요? 이런 일이야말로 우리 교회가
싫어하는 병영적, 전체주의적 사고 아닐까요?
문을 닫으면 그 안에 앉아 있는 이들의 마음은 편할까요. 문밖에 서 있거나, 다른 방으로
가야 하거나, 혹여 발걸음을 돌릴지 모를 이들을 두고 온전한 예배가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이번 일이 없었던 일이 돼서 가벼운 해프닝으로 지나가고, 피차 분발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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