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은각사 나무들
Posted 2016. 6. 2.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Oisii Japan
교토에서 처음 간 곳이 은각사(5/16/16) 였고, 거기서 깊은 인상을 받아 이 도시에 대한 첫인상이 아주 좋았단 얘길 한 바 있는데, 오래된 건물만큼이나 대나무들(5/17/16) 을 위시해 산책로 주변에 자리하고 있는 나무들이 주는 그윽하고 은은한 이미지가 영향을 준 것 같다. 나즈막한 경사가 진 숲은 이끼가 두텁게 껴 있었는데, 여러 갈래로 얽히고설킨 나무 뿌리들이 하얗게 드러나면서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저 푹신한 이끼들을 신발을 벗고 맨발로 밟으면서 숲의 정기를 느끼고 맛보고 싶고, 팔베개하고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도 싶었지만, 그랬다간 이 아름다운 숲은 간직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욕심이 필요 없을 정도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서 바라만 봐도 훌륭한 풍경을 선사해 주었고, 코끝에 살짝 다가오는 나무 냄새들은 충분히 그윽했다.
이런 분위기 좋은 숲은 아름드리 나무들만 빛나지 않는다. 부러진 고목, 잘라낸 둥걸들도 한데 어울려 숲을 이루며 나름의 운치를 자아낸다. 무엇보다도 은각사의 이끼들은 성한 나무, 죽은 나무를 가리지 않고 다가가서 온 숲을 덮어버린다. 잘리고 부러져 나간 곳은 덮어주되 형체는 그대로 드러나게 해 주어서 더 빛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숲의 한 요소로 역할은 하되, 주도하거나 압도하진 않고 주위를 빛내준다는 데 자신의 소임을 두는 것 같았다.
돌아와 생각해 보니, 내가 은각사를 걸으면서 느낀 안온함은 바로 이런 조화에서 비롯된 것 같았다. 뭐 하나 도드라지지 않으면서, 동시에 뭐 하나 빠지지 않으면서 조화를 이루는 곳. 그러면서도 일본 정원 특유의 치밀하게 꾸민 느낌을 최소화한 곳. 이게 은각사의 저력이었고, 그 깊은 매력에 빠졌던 것 같다. 언젠가 다시 가 보고 싶은 곳으로 남겨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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