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성 니시노마루 정원의 나무둥걸들
Posted 2016. 6. 5.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Oisii Japan오사카성 을 찾은 날은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4월도 막 하순에 접어들어 온 성내를 뒤집어 씌우듯하면서 장관을 이룬다던 벚꽃은 다 지고 신록만이 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가볍게 내리는 비가 봄의 운치를 더해 주면서 여행객의 발길을 반겨주었다. 천수각이 성의 전부이겠거니 생각했던 게 오산이었음을 일깨워준 엄청난 규모의 해자며 돌담에 매료돼 구경을 마치고 나오는데, 바로 옆에 오사카성 서쪽에 있어 니시(西)
입장료(200엔)를 내고 들어가는 곳인데, 우린 주유패스로 그냥 들어갈 수 있었다. 주유패스가 없거나 오사카성을 보고 시간이 많지 않거나 많이 걸어 다리가 아픈 경우엔 굳이 꼭 들어가 봐야 할 곳은 아니었다. 정원에 들어서니 동쪽으로 천수각이 보였는데, 조금 떨어져 있긴 해도 오사카성을 배경으로 사진 찍긴 좋은 위치였다.
일본 역사나 문화를 아는 현지인들에겐 나름 의미가 있는 곳이겠지만, 이미 오사카성의 위용에 압도당한 우리에겐 그저 넓고 별 다른 볼거리가 없는 데다 비까지 내려 서둘러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오는 조금 싱거운 시간이었다. 그래도 니시노마루에서 내 눈을 붙잡은 것은,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던 다양한 모양의 나무 둥걸들이었다.
1미터가 채 못 되게 남겨놓은 나무 둥걸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눈을 끌었는데, 대개 속이 파여 있었지만, 주위의 작은 풀들과 절묘하게 어울리면서 아름드리 나무들 사이에서 제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원래대로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었더라면 거의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을 텐데, 주변과의 조화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베임을 당한 게 전화위복으로 독특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어떤 건 연통 모양으로, 또 어떤 건 머리띠를 질끈 졸라매면서 버섯까지 자라게 하는 게 제법 볼만 했다. 잘려 둥걸만 남지 않았더라면 이런 나무들의 속사정과 속표정은 결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속이 온전한 나무들이 없는데, 이 나무들을 자르고 벤 이는 어떻게 이들의 속사정을 알고 골라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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