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접하지만 꼭 필요한
Posted 2016. 12. 25.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
모락산에서 계원대 후문으로 내려오는데, 본관 옆 잔디밭에 못 보던 작품 하나가 서 있었다.
미술대학인 이 학교 공간 곳곳에 세워 놓은 설치미술 작품의 하나인데, 짚풀보다는 단단해 보이는
갈대나 대나무를 엮어 수수한 게 무슨 의미로 세워 놓은 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두세 명이
들어가면 거의 꽉찰 것 같은데, 그래도 원형 바닥엔 나무 깔판 위에 조밀하게 엮은 그물 모양
카페트 비슷한 걸 깔고, 바람에 쓸려온 듯한 낙엽들이 뒹굴고 있었다.
지붕이랄 것도 없이 뻥 뚫린 천장과 드나들기 편하도록 아예 오픈된 출입문, 그리고 사방으로
숭숭 뚫린 틈새론 바람이 자유롭게 들락거렸고, 훤히 보이는 안쪽은 생활 공간이라고 하기엔 많이
못 미치는 쉼터 정도면 족해 보였다. 아주 오랜 옛날 원시인들에겐 주거 공간일 수도 있었겠지만,
볼품이 없고 주변 풍경과 달라 튀어 보였다. 이런 게 작품이라면, 작가에겐 미안하지만, 나도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문득 그 동안 이 작품을 눈여겨 보지 않았는데 눈에 띈 건 성탄을 앞두고 있어서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구주가 태어난 마굿간도 이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련한 생각과 상상이 잠시
머리를 스쳐갔다. 물론 이보단 나았을 수도 있고, 혹 못할 수도 있었겠지만, 비교가 큰 의미가 없을
정도로 오십보백보 아니었겠나 싶었다. 아무도 돌아보거나 주목하지 않는 가운데 겨우 몸 하나
뉘일 공간이 필요했던 그런 순간이 있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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