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4일 광화문 풍경
Posted 2016. 12. 26.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잡동사니
두 주간 못 갔던 광화문에 갔다 왔다. 마침 종각에 종로서적이 다시 문을 열었다는 기사를 읽고
어찌 생겼는지 둘러보고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동지가 지나 한겨울로 접어드는 연말이라 늦은
오후의 광장은 쌀쌀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마침 성탄 이브라서 산타 옷을 입고 온
이들이 여럿 보였는데, 털모자에 목도리 털장갑 방한부츠로 중무장한 아이들의 등뒤에 붙인 꼭
두각시 대통령 스티커 그림과 문구가 재밌다.
12월 초까지만 해도 메인 무대는 광장 중간쯤에 설치돼 대형 스크린이 등을 마주대듯 설치돼
있어 시민들은 광장 중앙을 마주보듯 앉아 있었는데, 이번엔 광화문 저 앞까지 진출해 광화문과
북한산, 청와대 한 방향을 보고 앉아 있었다. 이거 하나만 봐도 커다란 진전이 아닐 수 없다. 같은
함성이라도 더 크게 들리지 않았을까.^^ 록 가수 마야가 나 보기가 역겨워를 열창했다.
시민들이 외치는 구호는 여전했지만, 손팻말과 포스터들의 문구와 그림은 날로 진화한다.
청문회를 거치면서 박순실 두 사람 말고도 기춘 대감과 우병우에 새누리당과 황교안, 그리고
재벌 회장들까지 수의를 입힌 사진들이 여기저기 눈길을 끌었다. 길바닥에 붙인 포스터들은 수없이
밟혔고, 경찰차에 붙인 건 그대로 호송되는 것 같은, 유쾌한 분노의 패러디였다. 이들은 역사의
낙인을 얼마나 무겁게 인식할까. 얼마 전에 우리 교회에서 세례 받은 이도 보여 안스러웠다.
광화문 주변 온 동네를 철통 같이 둘러싸고 있는 경찰차는 시민들의 꽃 스티커 장식을 받다가
이번엔 또 다른 차벽공략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버스 위에 대형 천을 길게 대 미술가들이 밑본을
뜨고, 시민들이 글도 남기고 그림도 그리는 식으로 광장 설치미술작업을 하게 한 것이다. 하는 이나
보는 이 모두에게 작품이 따로 없었다.
이번 사태, 게이트는 예술가, 작가, 영화인들에게 무한한 창작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등장인물이 많고, 소재가 다양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스토리에 광장의 기록물만 남겨도 몇십 권은
족히 되지 않을까 싶은데, 갈 때마다 새로운 볼거리들이 추운 날씨를 무색케 한다. 무엇보다도
수십만, 아니 수백만, 곧 천만을 넘길 사람들의 발자욱과 목소리, 체온이야말로 꺼지지 않는
불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영하의 날씨가 계속될 한겨울 장기전에 돌입하면서 광장엔 전후좌우 여러 곳에 통로도 생기고
식후경하며 잠시 몸을 녹일 수 있는 포장마차들도 다수 합세했다. 30분 정도만 서 있거나 앉아 있어도
몸이 얼어와 오뎅, 번데기, 호떡 등 각종 주전부리에 쐬주까지 파는 이들의 불빛도 오히려 정겨워
보였다. 광화문에선 올겨울 성탄 이브가 이렇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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