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나 시인이랴
Posted 2017. 8. 15.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행짧지만 여운을 남기는 싯 구절 가운데 안도현 시인의 '무식한 놈'이란 시가 있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이 들길 여태 걸어 왔다니//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 이게 전문인데,
시인은 들국화로 통칭하는 비슷해 보이는 두 꽃을 두고 노래했다. 시인들이 이런 시만 써 준다면 훨씬 나은
시감(詩感)과 시흥(詩興)을 갖게 됐을지도 모르겠다, 고 우기게 만드는 리얼리티 쩌는 싯구다.
시도 모르지만 꽃도 잘 모르는 나는 한술 더 떠 개망초까지 끌어온다. 덕풍골 약수터에서 출발해 30분
정도 산길을 걸어 이성산성 터에 거진 이르면, 개망초가 활짝 피어난 얕은 언덕배기가 나온다. 저 위 나무
옆에선 텔레토비들이 뛰어나올 기세인데, 지친 걸음에 힘을 주고 올라가서 한 숨 돌리면서 눈앞에 펼쳐지는
예봉산과 검단산의 시원한 산세도 볼만 하지만, 이 나즈막한 개망초 동산, 구릉(丘陵)도 참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풍경이다.
개망초는 산길 여기저기서 흔히 보이기도 하지만 두어 달 가는 꽃인심도 인색하지 않고 넉넉해, 6월부터
이 언덕과 그 위에 펼쳐지는 풍경은 근사하기만 하다(이성산 개망초 한창이다(6/19/16). 비록 쑥부쟁이와 구절초,
그리고 가끔 개망초도 한 눈에 척 구별하지 못하고 헷갈려 하지만, 그래도 아직 절교까진 생각하지 않는데^^,
그러고 보면 아무나 시인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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