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점심 - 쏘시에티
Posted 2010. 11. 6. 08:42, Filed under: I'm traveling/Wonderful CapeTown이런저런 이유로 한 해에 두세 차례 해외에 나갔다 오곤 하는데, 비행 시간이 짧은 도쿄나 타이뻬이 같은 여행이 딱이지만 여정이 맘대로 정해질 순 없는 법. 이번처럼 20시간 정도 타고 내리면 시차가 바뀌면서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목적지에 도착할 즈음엔 온 몸이 뒤틀리게 마련이다.
공항에서 가이드가 Welcoming Lunch로 우리를 안내한 곳은 산 아래 낮은 언덕 길가에 있는 레스토랑. 점심 때가 됐지만, 싱가폴 항공의 서비스 정신으로 24시간도 안 되는 사이에 대여섯 차례 잔뜩 먹어 둔 터라 별로 시장끼를 느끼지 못한 우리는 또 먹어? 했지만, 실내에 들어서면서 아늑하고 차분한 인테리어에 비로소 아프리카 남단에 와 있다는 안도감 속에 이내 활기를 찾았다.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레스토랑은 천장이 높았고, 벽에 걸린 크고 작은 액자들로 고풍스런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앉은 반대편엔 현대적 최후의 만찬 그림이 걸려 있고,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점심시간의 손님들은 대부분 커플로 보였다.
곡물로 만든 빵이 버터와 함께 놓여 있고 곧 샐러드가 나왔다. 집에서 만든 것 같은 빵은 부드럽고, 올리브유를 두른 샐러드는 신선했다. 빵은 당연히 리필해 먹었다. 다들 좁은 좌석에서 지쳐 있다가 넓은 식당에서 신선한 음식을 접하니 대화가 즐거워지고 활기를 회복하는 듯 했다.
메인 요리는 해산물이래서 어떤 게 나올가 궁금했는데, 생선 스테이크였다. 이 일대에서 많이 잡힌다는 Hake Fish였다. 생선 자체는 대구처럼 담백한데, 굽는 솜씨와 오일과 쏘스로 솜씨를 드러내는 요리로, 그 후 다른 식당에서 두 번 더 나올 정도로 인기있는 메뉴 같았다. 훌륭했다. 케이프타운에 머무는 동안 먹은 음식 가운데 최고점을 줄 만 했다.
이곳 사람들은 웬만한 음식엔 꼭 아이스크림이나 푸딩 같은 후식을 먹는 것 같았다. 많이 달지 않아 입안이 개운해졌다. 나는 커피를 마셨지만, 차를 원하는 이들은 이곳 특산인 루이보스 차가 나왔다. 마지막날 대부분 선물용으로 루이보스 티백을 잔뜩 사 갔다. 나는 차이나 팩토리에 가면 주는 루이보스의 약간 애매한 맛에 별로 땡기지 않았다. 오리지날 루이보스를 한 번 맛보는 건데, 죽어라고 커피만 마셔 댔다.
식사를 대강 마치고 담소를 나누던 중에 이 식당의 다른 장소들이 궁금해 잠깐 둘러봤다. 식당 한 켠엔 아예 방 하나를 와인으로 둘러싸고 있었는데, 이쯤 되면 이곳 문화는 커피 시키듯 와인을 곁들이는 것일 게다. 와인 생산국이니만큼 와인 값은 그리 비싸 보이지 않았지만, 맛은 괜찮았을 것이, 다음날 와이너리를 방문해 시음하면서 알 수 있었다.
식당 한 구석에 재미있는 기계가 놓여 있어 한참을 바라보다가 종업원에게 물으니 믹서기란다. 저 정도면 커다란 고기도 갈려 나올 것이다. 자동 장치도 있고, 손으로 돌릴 수도 있는 것 같았다.
주방도 잠깐 둘러봤다. 내부도 들어가고 싶었지만, 영업을 방해할 순 없는 법. 이 정도의 풍경이면 어떤 요리가 나올지 예상이 되는 대략 깔끔한 분위기였다.
벽에 메뉴 칠판이 걸려 있었는데, 그때 그때 손으로 쓰는 것 같았다. 단위는 랜드인데, 1랜드는 170원 정도, 1달러는 6.5랜드 정도니, 식사와 함께 하는 와인값으로는 그리 쎄 보이지 않았다. 와인을 수입하는 우리만 비싼 돈 내고 먹는 것 같았다.
이런 식당엔 으레 걸려 있을 법한 우수 식당, 맛집 Award가 몇 개 걸려 있었다. 우리네처럼 흔하디 흔한 방송사 로고가 아닌, 제대로 된 협회에서 인증한 증서처럼 보였다. 역시들 식당을 나오면서 한마디씩 한다. 음식맛이 괜찮았는데, 역시 유명한 식당이었다고. 그러면 어떻고, 아니면 어떻고.^^
오랜 백인 지배 문화의 잔재랄까 유산을 보여주는 글귀가 동판에 새겨 있었다. 식당을 나갈 땐 주위 사람들을 위해 조용히 해 달라는 것. 의자 끌지 말고, 동행과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허풍스런 웃음 자제해 달라는 것 등이 포함된 말 같았디. 맘에 드는 문구였지만, 은근히 속이 꼬인다. 그래, 네들 잘났다.
모르긴 해도 이 식당도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엔 흑인과 유색인 출입금지였을 것이다. 그들은 요리나 서빙만 죽어라고 감당했을 것이다. 식당 생김새나 주변 분위기만 봐도 백인들의 교제권 아래 있는 동네였음을 보여 준다.
분위기와 맛은 좋았지만, 남아공의 역사가 잠시 오버랩되면서 다시 현실로 걸음을 떼었다. 그래도 식당이니 점수는 줘야겠지. 제 점수는요, 별점 3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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