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묘한 현실주의
Posted 2011. 4. 9.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Joyful Taipei타이베이 여행에서 본 디자인들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지하철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출구를 가리키는 한자와 영어가 절묘하게 동거하는 이 정방형 표지판은 그 중에서도 백미 격이었다.
디자이너의 단순해 보이지만 깊은 고민이 낳은 이 쌈빡한 아이디어는 영어와 한자라는 얼핏 어울릴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조합을 보란듯이 기가 막히게 어울려 보이게 만든다. 일상인 한자는 중심을 지키고, 영어는 앙증맞게 편승하면서 둘이 하나인 것처럼 자연스럽다.
이질적인 것을 동질적인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디자인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바삐 오르내리는 가운데 누구나 쉽게 알아보게 만드는 힘이 느껴진다. 아마 이 디자이너 자신도 지하철(MRT) 애용자였을 것이다.^^
지하철에서 본 또 다른 쌈빡한 아이디어는 사선으로 그어놓은 대기선(Waiting Line)이었다. 저렇게 그어놓으면 내리는 사람들은 방해 받지 않고 가운데로 내릴 수 있고, 타는 사람들 역시 내리는 사람들과 섞이지 않고 빨리 탈 수 있을 것이다.
이건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라기보단 부지런하고 눈썰미 좋은 역무원들의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출퇴근 등하교 시간대의 넘치고 밀리며 부딪히는 짜증나는 상황을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생각에서 이런 신선한 아이디어가 도출됐을 것이다.
보면 볼수록 작지만 강한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가 미처 보지 못한 헛점이나 약점도 있겠지만, 이렇게 절묘한 현실주의를 보여주는 작은 포인트들만으로도 타이베이에 후한 점수를 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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