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전과 동그랑땡
Posted 2010. 2. 15. 12:06, Filed under: I'm wandering/百味百想설과 추석 연휴 첫날은 으레 본가에 가고, 당일 오후엔 처가에 가는 것이 결혼 후 관례가 되었다. 어머니를 위시해 집안 여자들이 음식을 만드는 동안 남자들은 성묘를 다녀온 후 자리 잡고 앉아 TV 보면서 갓 해 온 음식 먹는 게 일과였다. 결혼 초만 해도 본가는 아파트가 아닌 구옥이어서 부엌이 밖에 있고 우물가도 있는 구조여서 아내가 힘들어 하던 기억이 난다. 잔뜩 쌓인 기름끼 묻은 그릇이라도 닦아 주면 좋으련만, 예전엔 설거지도 온통 여자들 몫이었다.
산적과 조기, 삼색 나물과 만두, 물김치와 튀각도 있지만, 설 음식 하면 녹두전과 동그랑땡이 대표선수일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가스렌지보다는 바닥에 신문지 깔고 둘러앉아 대접에 따라놓은 기름 잔뜩 두른 후 다리 저리도록 부치는 게 제맛이다. 어릴 땐 커다란 채반 몇 개에 가득하게 하느라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온종일 집안에 기름 냄새와 연기가 가득했었는데, 세월의 흐름과 함께 녹두전 크기도 줄어들고 전체적으로 가짓수도 줄어드는 등 많이 간소해졌다.
명절 쇠고 돌아오는 길엔 이것저것 한 보따리 싸 주셔서 며칠 잘 먹었는데, 한두 해 전부터 녹두전만 몇 장 싸 갖고 온다. 많이 먹지도 않거니와, 무엇보다도 아이들은 이 맛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며칠 후, 저녁식사 상에 노릇노릇해진 녹두전 한 장 올라오면 잠시 가족을 생각하고, 지나온 시절을 떠올릴 것이다.
'I'm wandering > 百味百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수리 국수집 (5) | 2010.03.13 |
---|---|
별 특색 없는 마르쉐 (0) | 2010.02.25 |
남산 돈까스와 케이블카 (0) | 2010.02.13 |
소세지 가지 볶음 (3) | 2010.02.08 |
툇마루집 된장비빔밥 (7) | 2010.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