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칸 On The Border
Posted 2011. 9. 26.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百味百想
오늘은 우리 부부의 결혼 24주년 기념일. 서울올림픽 전해인 1987년 가을에 결혼했다. 원래는 1박2일 제주도 여행을 생각했는데, 사무실에 다른 일이 생겨 한 달 늦추는 바람에 하루 먼저 가족 저녁식사를 하게 됐다. 식당은 삼성동 공항터미널 지하에 있는 멕시칸 그릴 온 더 보더. 그 다음해 12월 5공 청문회가 한창이던 때 태어난 g가 두어 번 갔다 왔는데 괜찮다며 강력 추천한 곳이다. 20분 정도 대기하다 들어갔는데, 분위기가 괜찮다.
멕시칸 레스토랑은 데킬라나 마가리따 같은 음료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바를 갖춘 곳이 많은데, 이 집도 바를 중심으로 좌우에 테미블이 마련돼 있었다. 작은 식당인 줄 알았는데 제법 컸고, 빈 좌석이 없어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 있다고 한다.
자리에 앉으면 기본으로 또띠야 칩과 살사 쏘스를 내 온다. 갓 구운 듯 온기가 남아 있는 또띠야는 지름이 10센티 정도 되는 큰 것들을 반으로 자른 것인데, 무한 리필이 가능하다. 우리도 두 바구니 반을 먹었다.
기다리는 동안 메뉴표를 보면서 몇 가지 골랐는데, 자리에 앉자 다시 받은 메뉴판에 우리가 고른 메뉴와 거의 비슷한 구성으로 패밀리 세트가 몇 개 있었다. 10% 정도 할인된 가격에 대표 메뉴들과 멕시칸 음료 세 잔이 나와 그걸로 시켰다.
첫 번째는 샘플러. 치킨 퀘사디아와 스테이크 나초, 플라우타와 구아카몰 등 다양한 맛을 볼 수 있어 고를 자신이 없을 때 무난한 선택이다. 하나씩 집어 먹으니 또띠야 칩과 이 접시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멕시칸 음식은 은근히 느끼하면서도 많이 먹혀, 토요일 산에 갔다 와 뺀 살 이상으로 다시 붙을 것 같다.
두 번째 접시는 g가 이 집에서 먹어본 것 가운데 가장 맛있다던 랜칠라다. 화이타 스테이크 위에 얹은 란체르 쏘스가 특이했다. 멕시칸 라이스와 블랙 빈도 함께 나왔다. 실제로는 사진에 나온 것보다 좀 더 맛있게 생겼고, 맛도 좋았다.
화이타 샐러드는 단순 베지터블이 아니라 철판 위에 구워 자른 스테이크와 치킨이 곁들여 나오는 묵직한 구성이었다. 넷이서 세 가지를 먹을 요량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메뉴마다 고기와 치즈가 들어가는 헤비한 식사가 됐다.
음료는 무알콜 과일 마가리따와 알콜이 살짝 들어간 것을 함께 시켰다. 크고 묵직한 잔에 평소 잘 접할 수 없는 멕시칸 음료는 맛도 맛이지만, 일단 모양새부터 화려하다. 잔 꼭대기에 설탕 가루를 묻힌 것도 특이했다.
전반적으로 한국화한 멕시칸 음식맛을 느낄 수 있었는데, 조금 더 매콤하게 가도 좋을 것 같았다. 넷이 이렇게 먹으면 10만원이 조금 안 나오는데, 웬만한 패밀리 레스토랑과 비슷한 가격대를 보였다. 전반적인 평점은 5점 만점에 3.5점 되겠다.
식사를 마치고 오늘의 주인공들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기념샷을 남겼다. 밝게 나온 것도 있지만, 세월의 흔적을 적당히 감추면서도 지난 24년의 동행을 즐거워하는 표정이 담겨 마음에 든다. 내년 이맘때면 벌써 은혼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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