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봉리 순대전골
Posted 2012. 3. 31.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百味百想어렸을 때부터 국과 찌게를 좋아했지만, 이상하게 잘 안 먹는 음식이 몇 개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순대국이었다. 아마도 비위가 약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서 몇 년 전부터 먹기 시작했는데, 요즘 종종 들리는 곳은 하남에서 광주 가는 43번 국도변 초입 왼쪽에 있는 무봉리 순대국이다. 그 길을 지나다니면서 계속 봐 왔으니 꽤 오래 전부터 있던 집인데, 몇 달 전에야 처음 가 보고선 입에 맞아 몇 번 찾아갔다.
늘 순대국만 먹다가 인원이 되면 전골이나 볶음을 먹어야지 하다가 수요일 저녁 열흘 남짓 어머니를 뵙고 출국하는 누이를 배웅하고 동생 내외와 넷이 가서 드디어 순대전골을 시켰다. 순대볶음과의 치열한 경합 끝에 간택되었으며, 모듬순대를 곁들일까 하다가 맛에 집중하고자 단독 메뉴로 지조를 지켰다.^^
중 자는 2만원, 대 자는 2만5천원인데, 대 자를 시키니 푸짐하게 담겨 나왔다. 비슷한 메뉴에 속하는 감자탕보다도 싼데, 이 집도 다른 건 조금씩 올렸지만 전골 값은 예전 가격 대로 받는 것 같았다. 끓기 전의 비주얼이 훌륭하다. 듬뿍 얹은 들깨가루와 마늘 다진 것 그리고 다대기와 뚝뚝 썬 대파까지 웬만하면 실패할 것 같지 않은 믿음이 갔다.
보글보글 지글지글 넘칠 듯 끓어올라도 손잡이 달린 전골그릇 위로 넘쳐흐르지 않아 신기했다. 그릇이 마법을 부리나보다.^^ 누군가 한 숟가락 떠서 맛을 보며 괜찮다는 표정을 짓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젓가락과 숟가락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우린 몰랐는데, 동생 말로는 무봉리 순대국이 괜찮은 맛을 내는 집이라고 한다. 대체로 진한 맛을 내 저녁에 먹기 좋았는데, 육수가 좀 짜서 우린 물을 좀 넉넉히 부어 다시 끓였다. 순대와 고기는 물론 콩나물과 떡이 넉넉히 들어있었다.
동생 내외는 청양고추를 달래서 각접시에 듬뿍 덜어 매운맛을 더 내서 먹었는데, 중국 살더니 청양고추를 무슨 향신료 쯤으로 봤나 보다.^^ 언젠가 매운 고추에 숨이 막힐 뻔하고 땀을 찔찔 흘리며 고생한 기억이 있는 소심한 나는 겨우 몇 개를 덜어 따라 해 봤는데, 음~ 그렇게 먹는 게 더 맛을 내는 것 같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맛이 좋아 순대와 고기를 충분히 건져 먹고, 국물도 깨끗이 비웠다. 들깨가루 흔적이 남은 게 꼭 추어탕 먹은 뒤끝 같다. 참 이상한 게 갈비탕이나 육계장 국물은 남기는 사람들도 추어탕이나 순대국 국물 남기는 건 별로 못 봤다.
언젠가부터 한국음식의 웬만한 마무리는 남녀노소 어른아이 구분없이 누구나 좋아하는 볶음밥이 됐다. 네 사람이니 공기밥 둘만 시켰는데, 이것저것 넣으면서 살짝 눌러 붙을 때까지 먹음직스럽게 볶아준다. 배 부르다며 안 먹겠다던 사람도 슬쩍 수저를 내밀고, 포만감 속에 나누는 형제와 동서간 대화도 정겹기 그지 없다.
이 집의 다른 메뉴들이 사진과 함께 벽면에 붙어 있다. 조금 정신 없어 보이기는 해도 이렇게 음식 사진과 함께 메뉴를 크게 붙여 놓으면 견물생심이라고, 한두 개 더 시켜 먹게 될 것 같다. 우리도 모듬순대를 작은 걸로 하나 시킬까 하다가 먹어 보고 결정하기로 했는데, 볶음밥까지 먹으니 안 시키길 잘한 것 같았다. 입맛 없을 때 가끔 가면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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