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꾸똥꾸
Posted 2010. 3. 19. 14:43, Filed under: I'm churching/House Church
지난주 내가 다니는 교회는 설립 20주년을 맞았다. 평소에도 워낙 행사와 담쌓고 지내는
교회인지라 별 기대 없이 가서 예배에 참석했는데, 끝나고 점심시간에 달랑 빵봉지 하나와
귤 하나를 받았다.
빵 봉지에는 20주년 기념 로고가 들어간 기념빵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교회 인근
쇼핑센타에서 파는 카스테라를 그냥 주기가 뭐했던지 스티커를 붙였는데, 기왕이면 별 관계
없는 쇼핑센타 이름 위에 붙일 것이지, 마치 거기서 제공한 것처럼 되고 말았다. 빵꾸똥꾸다.
몇 주 전 담임목사가 주보에 쓰는 목회자 코너란 칼럼에 앞으로 주일날 교회에선 떡을 배달시켜
먹지 말자는 아닌 밤중에 빵봉지 터지는 소리 비슷한 글이 실린 적이 있었다. 사연인즉슨, 주중에
자녀의 결혼이나 부모의 상을 당한 교우들이 축하나 위로차 격려해 준 교우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주일점심식사에 떡을 내는 훈훈한 관례가 있었는데, 이 떡 상자를 주일 아침에 배달하는 사람들이
교회 때문에 교회 나가지 못한다는 듯한 논리였다.
일면 일리가 있어 보였고, 꼭 떡을 안 먹어도 될 일이지만, 하고 많은 이슈 중에 떡 배달 시키지
말라는 걸 칼럼에 쓸 정도로 거슬린 일이었는지 약간 씁쓸했다. 빵꾸똥꾸다.
그래서 한 교우는 인절미나 절편 같은 떡 대신에 코스트코의 대형 머핀을 제공했고, 권사님들은
쇼핑센타 로고를 그대로 살리고 20주년 로고를 붙인 웃기는 카스테라 봉지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빵 부스러기들이 바닥에 떨어지고, 반쯤 먹다 만 머핀들이 돌아다니고, 어쩌다
빵봉지가 바닥에 굴러다니게 된 것이다.
오후에 열린 제직회에서 한 분이 주일학교 일부 아이들이 빵봉지를 운동장에 버려 안타깝다며
빵봉지를 줍자는 또 다른 빵봉지 터지는 제안을 했는데, 사회를 보던 담임목사가 좋은 의견이라면서
제직들 반은 운동장, 반은 동산의 빵봉지를 줍자는 바람에 제직회 끝나고 다들 빵봉지 줍고 가야 했다.
갑작스런 청소를 해서가 아니라, 20주년 맞은 날에 할 일이 그렇게도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빵꾸똥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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