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새 단상
Posted 2010. 1. 9. 08:38, Filed under: I'm churching/House Church연초가 되면 교회들은 저마다 특새를 하느라 분주하다. 일주일은 기본이고, 두 주나 세 주에
걸쳐 하는 교회도 꽤 눈에 띈다. 새해 벽두를 중시하는 분위기는 교회라고 예외가 아니어서 전에도
연초가 되면 특별새벽기도회를 하는 교회들이 없었던 건 아니었으나, 요즘처럼 특새가 유행이
된 것은 연중 퍼레이드 식 새벽기도로 유명한 명성교회와 몇 해 전 외부 강사들을 초대해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인 사랑의교회에서 히트를 친 다음부터이다.
우리교회도 이 흐름에서 예외는 아니어서, 서너 해 전부터 연초 한 주간을 특새 주간으로
광고하고, 열심히들 모여 기도하는 것 같다. 월요일부터 몰아닥친 한파와 기록적인 폭설이
무색할 정도로 연일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마지막날인 토요일 새벽엔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가득 차 무슨 주일예배에 온 것 같기도 했다. 우리에게도 이런 간절함이
있었구나 하는 공감대가 서로의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든 것 같다.
우리교회의 특새는 조금 특이한 것이, 해마다 책 한 권을 선정해 그 책을 요약 설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 릭 워렌의 <회복으로 가는 길>, 이재철의
<회복의 목회> 등에 이어 올해는 강준민의 <위기를 극복하는 바라봄의 능력>이 텍스트북으로
선정됐다. 연초부터 책도 읽고, 거기에 기대어 기도도 하는 나름대로 신선한 기획으로 받아들여진다.
오스틴의 책을 빼곤 나름대로 좋은 책들인데, 문제는 인도 방식이다. 우선 매일 새벽 시간에
다루기엔 조금 길게 느껴지는 A4 앞뒤 한 장 분량의 프린트물은 성경을 읽는 것도, 그렇다고 저자의
핵심 사상을 짚어주는 것도 아니어서 조금 지루하게 느껴진다. 요점만 두어 군데 짚어주면서
저자가 다루고자 하는 내용을 한두 가지 질문 형식으로 던져주면 하루 종일 곰곰 떠올리면서
기도제목으로 삼을 수 있을 텐데, 너무 많은 분량은 새벽부터 생각을 복잡하게 만든다.
그리고 기도제목을 주면서 합심기도를 요청할 때도 설명이 긴 편이라, 듣다 보면 기도할
포인트를 놓칠 때가 종종 생긴다. 그냥 쉽게 한 제목씩 기도하게 하면 좋을 텐데, '세 가지'
기도제목을 주기 때문에 세 가지 다 제대로 못 구할 때가 많이 생긴다.^^
여기에 올해는 우리가 즐참하기 조금 곤란한 상황이 하나 더 생겼는데, 세겹줄 기도회라
해서 미리 세 명이 한 조를 이뤄 서로의 기도제목을 나누고 매일 같이 기도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애시당초 이 방식이 별로 땡기지 않던 우리는 세겹줄 파트너를 미리 만들지 않았고, 초반 사흘을
건너뛰고 출석 도장 찍듯 목, 토 이틀만 참석하면서 특새 순서 후반부의 세겹줄 기도시간에는
서둘러 나와야 하는 다소 민망한 상황을 맞게 됐다.
아마도 내 영성 가운데 가장 취약한 부분이 기도임은 내남이 크게 부인하지 않는 것이지만,
그래도 요즘과 같은 '묻지마 따지지마 그냥해' 특새 열풍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모름지기 새벽에 하는 기도라면 말씀과 찬송, 기도 순서 등에서 좀 더 새벽적인 정서를
자극하면서 기도의 품에 얼굴을 묻고 꿈같은 시간을 보내게 할 순 정녕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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