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물바가지
Posted 2012. 4. 27.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I'm a pedestrian
검단산 중턱 곱돌약수터 돌담 위에 물바가지 예닐곱 개가 놓여 있다. 파란색도 있지만,
물바가지의 대표선수는 역시 빨간색이다. 앞서 물을 떠 먹은 이들이 아무렇게나 놓은 거겠거니
싶지만, 그렇지 않다. 자세히 보면 일정한 간격으로 보기 좋게 놓여 있다. 더 자세히 보면
빈 바가지가 아니라 물이 가득 담겨 있다. 그렇다면 이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이렇게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래는 시계와 거울, 온도계가 걸려 있는 나무판 물바가지 구멍에 맞춰 걸어놓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마치 치성을 올리듯, 약수터 파이프 위 공터에 물을 담아 늘어놓은
것이다. 추측컨대 산에 오는 이들의 안녕을 빌거나 어떤 소원을 비는 이가 일찍부터 와서 이렇게
늘어놓기 시작했고, 뒤에 오는 이들도 이것이 마치 무슨 무언의 법칙이나 약속이라도 되는 양
물을 받아 마신 다음엔 다시 채워 놓은 것 같았다.
뭐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사실 등산객이 많은 산이고, 여기가
중간 정도 되는 지점으로 쉬어갈 수 있는 전망 좋은 자리라서 이용하는 이들이 다른 곳보다
많고, 물맛 또한 일품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약수가 나오는 파이프가 여러 개 있는 건 아니어서
저렇게 많은 바가지는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또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앞사람이 마시던
바가지를 헹궈 받아 마시는 재미도 쏠쏠해 바가지는 서너 개면 충분하다.
내역과 연유를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보기에 나쁘진 않았다. 잠시들 걸음을 멈추고
이 색다른 약수터 풍경을 바라보며 숨을 고르는 데도 일조할 것 같았다. 약수터 시계는
어느덧 4시 10분을 넘기고, 온도계는 안개비가 내려 영상 10도에 조금 못 미치고 있었다.
빨간 파란 물바가지 몇 개가 약수터 풍경에 묘한 생동감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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