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구와 함께한 예빈산행
Posted 2012. 5. 11.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I'm a pedestrian지난주에 오랜만에 주일 새벽산행을 다녀왔다. 6시 15분쯤 집을 나서 팔당대교를 지나
예봉산과 예빈산이 한데 있는 등산로 초입에 차를 대고 오른쪽의 예빈산 직녀봉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30여 분 줄곧 오르막길을 오른 뒤엔 시원한 풍경이 펼쳐지는 구간인데,
이른 시간이어선지 맑은 봄날인데도 오르내리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오늘 등산은 혼자려나보다 하고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뒤에서 백구 한 마리가 허락도
없이 졸졸 따라오기 시작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좋은 품종도 아주 막 자란 똥개도 아닌
놈이 선량하게 생긴 게 순해 보였다. 내가 개를 좋아했다면 단박에 멈춰서서 쓰다듬어
주었겠지만, 그저 무심한 표정으로 잠깐씩 뒤돌아볼 뿐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몇 번을 앞서거나 뒷서거니 하면서 종종걸음으로 따라오길래 언제까지 오려나 하고
그냥 내버려두었다. 백구와의 산행 기회가 그리 흔할 것 같지 않아 가끔 멈춰서서 녀석의
온전한 모습을 담고 싶었지만, 어찌나 이리저리 움직여대는지 결국 초점이 잘 맞은 사진은
남기지 못했다.
뒤로 비싼 얼굴을 숨겨가며 나를 놀려댔다. 나와의 등산은 허락해도 초상권은 지키겠다는
의지를 여러 번 보이길래 급기야 온전한 모습을 담아내려는 욕심은 버려야 했다.
오르막이 끝나는 30여 분 동안 녀석은 마치 내가 기르는 개라도 되는 양 주인과 보조를
맞추면서 새벽산행을 즐겼다. 오르막길이 끝나고 숨 좀 돌리면서 이제부터 평탄한 슾길을
즐길 양으로, 네 덕분에 힘든 줄 모르고 올라왔다는 치하를 건네려 뒤를 돌아봤을 때,
녀석은 어느새 자신의 소임을 다 마치고 원래의 주인을 찾아 집으로 돌아간 뒤였다.
다음에 다시 이 시간에 이 산을 찾으면 다시 녀석의 얼굴을 볼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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