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Posted 2012. 5. 26.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산을 처음 오르기 시작했을 땐, 일단 높이 올라갈수록 더 좋은 풍경과 전망을 볼 것
같았다. 실제로 평지에서보다 산으로 들어갈수록, 조금씩 고도를 높일수록 숨어 있던
풍경들이 인사하고 손짓하고 노래불러 주었다. 같은 하늘이라도 평지에서 보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시원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산이란 게 높이만 있는 게 아니라 골도
있고, 숲도 있어 반드시 높을수록 좋은 경관을 제시하는 건 아니란 걸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가령 오르던 산길에서 잠시 숨도 돌릴 겸 뒤를 돌아봤을 때 앞만 보고 갈 땐 볼 수
없던 멋진 풍경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는 걸 알고는 조금 더 올라가서 좀 더 완전한
풍경을 봐야지 했는데, 막상 올라간 그 자리에서는 나무가 가로막고 있다든지, 몇 분
사이에 그 좋던 구름이 사라져 버렸다든지 해서 평범한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또 하나, 산길에서 보는 풍경은 그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각도랄까 방향에 따라 영향을
받는데, 수요일 모락산 산책이 그랬다. 보통 때 점심산책으로 모락산에 갈 때는 사인암이란
전망 좋은 바위까지만 갔다 내려오는데, 두어 달에 한 번씩은 내친김에 십여 분 더 걸리는
정상까지 갔다 오곤 한다. 이러면 당연히 고도가 더 높은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더
나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조금 낮은 사인암이 제공하는 풍경이 훨씬 멋있다.
조금 낮긴 해도 300미터 정도 높이의 사인암은 왼쪽으로는 산본과 평촌, 가운데로는
인덕원과 과천, 오른쪽으로는 백운호수변까지 한 눈에 펼쳐 보여주는 기가 막힌 포인트를
자랑한다. 그러니까 왼쪽으로는 수리산, 가운데로는 관악산과 그 너머 남산과 멀리 북한산,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청계산과 바라산 일대를 쭈욱 한 눈에 담는 걸 허락한다. 작년 9월
사인암에서 바라본 풍경은 가을 하늘과 구름이 함께 어울려 시원하기 그지없었다.
그보다 50여 미터가 높은 모락산 정상에 서면 일단 먼저 보이는 건 평촌과 산본, 안양
일대의 아파트 숲이다. 오른쪽으로 관악산이 보이긴 하지만, 사인암이 보여주는 풍경에 비헤
확실히 한 급수 아래다. 작년 가을 사진에 비해 구름이 없다는 점을 감안해도 한 끝, 아니
두세 끝 차이가 나는 풍경이다.
물론 이 정도만 해도 평지에선 볼 수 없는 시원하고 확 트인 풍경이니 괜히 풀풀댈 일은
아니다. 전망은 조금 다르지만, 정상은 정상대로 또 다른 묘미와 즐거움을 제공하니까 말이다.
점심시간에 근방에 한 시간 안짝으로 산책과 등산을 겸해 다녀올 수 있는 멋진 산책지를
갖고 있다는 건 보너스 중에서도 상등급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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