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듬하거나 넘어지거나
Posted 2012. 6. 24.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산에는 대부분 위로 꼿꼿하고 쭉쭉 뻗어나가는 나무들 사이로 간혹 비스듬하게 기울어
자라는 나무들이 있다. 바위나 절벽의 소나무들이야 으레 그러려니 하지만, 특별한 지형적
이유가 없는데도 키 큰 나무들이 비스듬하게 자라는 걸 보면 무슨 연유에서 그런지 궁금해진다.
멀리서 볼 땐 부러지거나 잘려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가까이 가서 봐도 뿌리가 뽑혔거나
부러진 게 아니라 자라기를 그리해 그렇게 보이는 나무들이 있다.
저게 쓰러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과는 달리 비스듬하게 기울어졌어도 잘만 자라는
게 나무다. 여간해선 쓰러지지 않다가 어느날 옆나무에 닿으면 슬그머니 몸을 기대고, 그러면
싫어하는 내색없이 기꺼이 받아주면서 공생하는 게 나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낮시간대에
잠시잠깐 그 나무 일대를 스쳐지나가면서 해본 내 생각일 뿐, 밤에 저 둘이 어떻게 치고 받고
싸우는지는 아무도 알 도리가 없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부러지거나 뿌리채 뽑히는 험한 일을 당하기도 한다. 세쿼이어 나무까진
아니어도 십 미터는 족히 넘는 저 거대한 나무가 쓰러지면 연쇄작용으로 이웃의 작은 나무들도
함께 쓰러지는데, 어떤 건 치워주지만 대부분은 그냥 내버려두는 것 같다.
두세 해가 지나 올해 여름이 되면서 쓰러진 나무에도 새 순이 돋기 시작하더니 새 가지와
이파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거의 죽은 줄 알았던 나무에서 여전히 왕성한 생명력을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자연의 경이가 아닐 수 없다. 며칠 사이로 부쩍 초록색이 짙어지면서 드러난
뿌리만 아니면 쓰러져 뽑힌 나무란 걸 알 수 없을 정도로 주위와 잘 어울려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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