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er Spot
Posted 2018. 1. 3.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Kiwi NewZealand많이 알려져 있진 않지만 뉴질랜드는 와인과 맥주의 나라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날씨와 물이 좋기 때문이지만, 한적한 자연의 나라에서 커피나 와인, 맥주가 발달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우리나라 보틀샵에서도 Monteith's 같은 뉴질랜드 맥주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마타카나 농장에 머무는 동안 살짝 맛 본 동네 마트에서 파는 MOA의 페일 에일도 예상대로 괜찮았다.
귀국하기 전에 제대로 된 맥주 맛을 보고 싶어(들이마시려는 게 아니다^^) 커피 랩에서 롱블랙 한 잔 하고 점심도 먹을 겸 대낮에 비어 스팟(Beer Spot)을 찾았다. 뭐, 현지 문화 체험이니까~. 흑백만 써서 단순하면서도 깔끔하고 자유로워 보이는 만화풍의 맘에 쏙 드는 디자인이 한껏 기대감을 높여 주었다. 카운터 앞엔 키위(뉴질랜드) 맥주에 관한 책도 소개하고 있는데, 실물을 미처 구경하진 못했지만 Beer Nation이란 타이틀이 호기롭고, 라벨에 담은 홍보 문구들이 귀엽다.
화살표대로 돌아서니 바깥 벽면에 내건 커다란 올블랙 배너에 이곳 스타일이랄까 자존감, 자부심 넘치는 슬로건들이 10개 가까이 써 있다. 위대한 맥주 세계로의 관문, 어서 와! 당신이 찾던 맥주 등 하나 같이 뻥이 들어간 말들이었는데, 이 친구들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 큰소리치나 싶었다. 발판을 딛고 들어서려는데 음~ 여기서부턴 'C' 자는 꺼내지도 말란다. 무슨 C 자를 말하는 걸까, Craft Beer 같은데, 크라프트 맥주는 명함도 못 내밀 이들만의 뭔가가 뭘까?
Tap 40를 갖춘 집에 들어왔다며 은근한 자랑이다. 40개의 탭이면 어느 정도일지 아직까진 가늠이 안 되는데, 이내 그 비밀과 신비가 풀린다. 한쪽 벽면에 자신들이 만든 40개의 맥주를 종류별로 배열해 놓고 고객의 선택을 기다리는 것이다. 병뚜껑보다 크게 디자인한 맥주 배지 앞에 1번부터 40번까지 번호를 붙이고, 스타일 별로 분류해 고르게 하는 것이다. 음~ 이쯤 되면 열이면 아홉은 선택 장애를 일으킬 게 뻔하니, 어쩌면 선택을 아예 하지 말라는 말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40개의 탭이 다시 번호와 이름과 함께 일렬로 서 있고, 윗쪽엔 품질 설명서인지 인증서인지를 잔뜩 걸어놓았는데 간지가 장난이 아니다. 아마 g가 왔더라면 보는 순간 환호성을 질러댔을 것 같은데, 맥덕이 아닌 나는 그저 이런 걸 보는 것만으로 벌써 기분이 좋아졌다. 아무래도 여러 스타일 가운데 몇 개 마셔 본 페일 에일 계열과 과일향 나는 게 친숙하게 다가왔다.
우리처럼 처음 왔거나 이것저것 맛보고 싶으면 6개를 고을 수 있는 나무판을 받아 원하는 번호를 적어내면 샘플러 6개를 채워주는 방식이었다. 주당이 아닌 내가 다 마시긴 좀 많아 보이는데, 여길 와 본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번호를 원하는 글라스 크기에 주문할 수도 있었다. 안주는 바로 옆 마당에 요일별로 오는 푸드 트럭에서 파는 구운 버섯을 얹은 치킨 프라이. 건배사는 무.한.도.전!(무조건 도와주자-한없이 도와주자-도와달란 말 하기 전에 도와주자-전화 받기 전에 도와주자)
솔직히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어서 몇 개는 찍었는데^^ 어떤 맛일지 몹시 궁금했다. 일단 그림이 그럴듯 해서 이런 방향 저런 각도로 여러 장 찍었는데, 마시기 전에 그림에 취했다. 각 번호의 특성을 설명해 주는 메뉴판 비스므리한 게 있었는데, 한 마디로 다 맛있고 독특하다고 써 있었다.^^ 번호마다 도수도 다르고 값도 달랐는데, 대체로 잔당 $4(3천원) 안팎으로 네 사람이 $100(7만7천원쯤) 정도니, 인당 만원대 후반 정도면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겠다.
사실 잘 마시지 못하고 맥주맛이나 향보다도 라벨 디자인과 분위기가 더 땡겼는데, 재밌는 문화 경험을 했다. 바로 옆집엔 와인샵과 중국인들이 하는 마누카 꿀과 건강식품 등을 파는 샵도 있어 잠시 아이 쇼핑도 했다(이런 건 글렌필드에 있는 한인들이 하는 샵이 좀 더 싸다). 이런 데 갔었노라 자랑도 할 겸 맥덕 g에게 주는 선물로 그 중 맛이 근사했던 과일향 나는 28번 Razzmatazz 한 병($12)을 공수해 가는 센스를 발휘했고, 당연히 환호성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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