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각정에 놓인 식탁의자
Posted 2013. 4. 7.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점심산책 출발점인 반도보라 아파트 단지와 계원대 경계 지점에 있는 작은 공터엔 인근
주민들과 오가는 등산객들이 앉아 쉬다 가도록 육각정과 벤치 두 개가 있다. 마루에 난간까지
제대로 갖춘 육각정 안엔 언제부터인지 누워서 들 수 있도록 역기를 갖다 놓더니, 최근에는
누군가가 식탁 의자를 갖다 놓아 멀리서 보면 원래부터 그리 놓인 걸로 보이기도 한다.
필시 어느 집에선가 잘 쓰다가 새 걸로 바꾸면서 내버린 것을 가져온 모양이다. 앤틱 스타일로
편안한 팔걸이와 목부분까지 오는 등받이에 푹신한 쿠션이 등쪽까지 이어져 한눈에 보기에도
싸구려가 아니고 제법 값이 나갔을 고급의자로 보이는데,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고 육각정 안에
세 개, 밖에 두 개 도합 다섯 개나 되는 6인조 세트에서 이가 하나 빠졌다.
그래도 육각정 안에 놓인 의자나 밖에 놓인 의자 모두 제자리가 아니어서인지 조금 어색해
보이기는 한데, 원래의 용도였던 식탁이 없기도 하거니와, 실내에 있어야 할 의자가 실외에, 그것도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공터 잔디밭 위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리 보이는 것 같았다. 누가 안 앉아
있어도 숲속 낙엽 위에 놓인 의자가 제법 있어 보이는 게 폼이 난다. 꼭 숲의 회의를 주관하는,
약간 내외하는^^ 왕과 왕비의 의자 같다.
마루와 지붕이 있는 육각정 안에 놓인 의자들은 모서리에 줄과 간격을 맞춰 놓아서 제법
폼이 나는데^^, 잠깐 동네 마실 나오는 이들이나 등산객들이 벤치가 아닌 1인용 식탁 의자에
앉아 쉬었다 가거나 담소를 나누다 가도록 신경쓴 것 같다. 너무 똑같은 의자만 놓으면 단조롭고
심심할까봐 수수한 식탁의자 하나를 갖다 놓는 센스가 귀엽다.
요즘은 가구나 가전제품을 버릴 때도 막 버려선 안 되고, 크기에 따라 쓰레기 수거료에
해당하는 몇 천원자리 스티커를 구입해 붙여야 하는데, 스티커 비용을 아끼려 여기다 갖다
놓은 건지, 아니면 쓰레기장에 버린 걸 다른 사람이 주워 온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의자가 놓이면서 원래부터 놓여 있던 벤치는 그날 이후 파리를 날리게 됐다.
취향에 따라 1인용 의자보다는 다인용 벤치를 선호하는 이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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