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아 바스러진 산길 계단
Posted 2013. 4. 14. 06:12,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오면 산은 하루가 다르게 산색이 변하고, 공기가 달라진다. 기온이 오르고 기분 좋은 바람이 불어오면 새들이 울고 꽃은 피어나면서 아연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이렇듯 다 좋아지는 것 같지만, 몸살을 앓는 것들도 있다.
등산로에 놓인 두꺼운 나무 계단은 원래는 흔들거리지 않도록 땅에 단단히 박아두고, 양 옆을 작은 버팀목으로 지탱해 놓지만, 등산객들이 많이 밟고 다니면서 슬슬 들썩거리고, 겨우내 쌓였던 눈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아랫쪽부터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한 철에 급격히 나빠지는 건 아니지만, 가는 비에 옷 젖는 줄 모르고, 잔 매에 장사가 없다고, 몇 해에 걸쳐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서서히 아래가 패이기 시작하고 흔들거리게 된다.
대개 앞사람들이 밟은 곳을 뒷사람들도 밟게 마련이라 집중적으로 밟힌 부분은 시간이 지나면서 껍질이 벗겨지기 시작하고 틈이 생기게 시작한다. 지름이 한 뼘쯤 되는 단단한 나무도 처음엔 단단하고 매끈했지만, 밟고 찍히고 얼었다 녹았다를 거듭하다 보면 서서히 물러지고 상처가 나다가 바스러지게 마련이다.
그런 와중에 버팀목마저 부러지거나 사라져 버리면 나무 계단은 꼼짝없이 흔들리다가 끝내는 옆으로 밀리게 되고, 어떤 건 처음 있던 자리에서 꽤 떨어진 곳으로 굴러가거나 옮겨졌다가 새 걸로 대체되는 운명에 처하고 만다.
패일 대로 패이고 닳을 대로 닳아 계단으로서의 수명을 거의 다한 나무들은 간혹 원래 형태와는 크게 모습이 달라지기도 하는데, 어떤 건 통나무라기보다는 무슨 말라 비틀어진 악어 같은 모습으로 등산객들을 맞는데, 이쯤 되면 계단이나 발판으로서의 소임은 거의 졸업했다고 봐야 한다. 산마다 이런 게 몇 개씩은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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