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발가락
Posted 2013. 4. 25.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
토요일 오전 내내 내리던 비가 조금 그치는 기미를 보이길래 어머님과 동네 벚꽃산책에
나섰다. 비도 오고, 다음 주말이면 그 곱고 화사하던 꽃잎들이 다 떨어져 다시 내년을 기약해야
할 것 같기에 일기가 조금 안 좋아도 마음이 급해졌다. 어머니 보폭에 맞춰 평소의 모데라토-
안단테를 버리고 아다지오-라르고로 마냥 걸었다.
보폭을 줄이고 걸음을 늦춰도 중간중간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봐야 했다. 멈춰 서면
보인다고, 자연스레 아파트 화단에서 평소 그냥 스쳐 지나가던 것들, 돌이며 꽃이며, 심지어
흙까지 새삼스럽게 눈에 띄었다. 그 가운데서도 마치 육중한 몸통에 긴 발가락을 내밀면서
우뚝 서 있는 것 같은 나무 한 그루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땅으로 내린 뿌리는 얼추 대여섯 개쯤 돼 보였는데, 생긴 것도 묘하게 닮은 게 영락없는
나무 발가락이었다. 봄날 치고는 약간 쌀쌀한 오후였는데도 건강을 과시하려는 듯 양말을
신지 않고 있었다. 발가락 사이로 작은 풀잎들이 간지럽히며 말을 걸었지만, 성격이 무뚝뚝한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거기 그냥 오래 서 있기만 했다. 꼭 고릴라 발 같다.
나무에 발가락이 있다면 손가락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작년 11월에 갔던 뉴질랜드의
해밀턴에 있는 와이카토 대학 호수가에서 본 나무가 생각 났다. 위로 뻗은 가지 수가 얼추
대여섯 개쯤 되고, 펼친 손바닥 모양새에 영락없는 나무 손가락이었다. 나무니까 엄지와 검지
등의 구분은 그리 유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나무 손가락의 취미는 매니큐어 바른 손톱을
호수에 비춰 보는 것. 지루하지도 않은지, 하루 종일, 아니 일년 열두 달을 그러고 있네.
나섰다. 비도 오고, 다음 주말이면 그 곱고 화사하던 꽃잎들이 다 떨어져 다시 내년을 기약해야
할 것 같기에 일기가 조금 안 좋아도 마음이 급해졌다. 어머니 보폭에 맞춰 평소의 모데라토-
안단테를 버리고 아다지오-라르고로 마냥 걸었다.
보폭을 줄이고 걸음을 늦춰도 중간중간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봐야 했다. 멈춰 서면
보인다고, 자연스레 아파트 화단에서 평소 그냥 스쳐 지나가던 것들, 돌이며 꽃이며, 심지어
흙까지 새삼스럽게 눈에 띄었다. 그 가운데서도 마치 육중한 몸통에 긴 발가락을 내밀면서
우뚝 서 있는 것 같은 나무 한 그루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땅으로 내린 뿌리는 얼추 대여섯 개쯤 돼 보였는데, 생긴 것도 묘하게 닮은 게 영락없는
나무 발가락이었다. 봄날 치고는 약간 쌀쌀한 오후였는데도 건강을 과시하려는 듯 양말을
신지 않고 있었다. 발가락 사이로 작은 풀잎들이 간지럽히며 말을 걸었지만, 성격이 무뚝뚝한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거기 그냥 오래 서 있기만 했다. 꼭 고릴라 발 같다.
나무에 발가락이 있다면 손가락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작년 11월에 갔던 뉴질랜드의
해밀턴에 있는 와이카토 대학 호수가에서 본 나무가 생각 났다. 위로 뻗은 가지 수가 얼추
대여섯 개쯤 되고, 펼친 손바닥 모양새에 영락없는 나무 손가락이었다. 나무니까 엄지와 검지
등의 구분은 그리 유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나무 손가락의 취미는 매니큐어 바른 손톱을
호수에 비춰 보는 것. 지루하지도 않은지, 하루 종일, 아니 일년 열두 달을 그러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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