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낙화 - 봄에도 꽃이 떨어지누나
Posted 2014. 5. 28.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봄에도 꽃이 떨어진다. 꽃이란 게 피었다가 지게 마련이고, 지면 떨어지는 게 당연한
이치지만, 떨어질 낙(落) 자가 들어간 낙엽(落葉)이 정서상 거의 가을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바람에 꽃이 떨어지는 낙화(落花)도 무심코 가을 무렵의 일로 떠올리기 쉬운데, 봄에도
꽃은 떨어진다. 조금 어색하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春落花 쯤이 될지 모르겠다.
봄의 전령사(herald)를 자처했던 벚꽃이 지기 시작해 떨어진 지도 한 달이 다 됐다.
그 곱고 아름답던 벚꽃은 바람이 불면서 꽃비로 변하기 시작했고, 비라도 내린 날 다음이면
여지없이 거리를 꽃잎으로 물들였다. 나무에 달려 있을 때부터 달달해 보이며 설레게
만들더니 땅바닥에 낮게 깔려서도 고운 빛은 여전했다.
5월 하순의 산길에도 꽃잎들이 떨어져 꽃비가 내렸다. 벚꽃보단 덜 곱지만, 그래도 명색이
꽃이니 그리 흉하진 않다. 어찌나 많이 떨어져 있는지 빈틈을 찾기 힘들 정도로 땅을 휘덮고
있었다. 시절과 색깔이나 생긴 걸로 봐선 아카시아 꽃잎들 같은데, 근처를 지날 때 별다른
향기가 안 났으니 어쩌면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수북하게 덮인 곳도 있지만, 바람에 쓸려갔는지 조금 틈을 내준 곳엔 기다렸다는 듯이
정오 무렵의 햇볕이 채워주었다. 나무에 달려 있을 때도 햇볕의 덕을 봤는데, 땅에 떨어져
말라 비틀어져 숲으로 밀려가거나 땅에 스며들기까지 끝까지 뒤를 봐줄 기세였다.
떨어진 봄날 꽃잎 픙경 가운데 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것은 뉴질랜드 코스타가
열리는 해밀턴 시에 있는 와이카토 대학 교정의 키 작은 나무 한 그루. 기숙사 흰색 벽과
초록색 잔디를 배경으로 피워내는 꽃도 아름다웠지만, 잔디 위에 떨어진 붉은 꽃잎은 강렬하기
이를 데 없어 하루에도 몇 번 저 길을 지나다닐 때마다 발걸음을 멈추고 쳐다보곤 했다.
남반구의 11월 셋째주였으니까 계절은 늦봄이니 이것도 春落花임엔 분명했다.^^
와이카토 캠퍼스의 빨간 꽃나무 (2/18/13)
'I'm wandering > 동네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길 초입 (2) | 2014.06.22 |
---|---|
꽃, 경의를 표하다 (2) | 2014.06.06 |
표범무늬 계단 (2) | 2014.04.12 |
텃밭 경계 (2) | 2014.04.11 |
고택과 진달래 (2) | 2014.0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