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경의를 표하다
Posted 2014. 6. 6.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봄에서 여름으로 접어드는 5월 하순과 6월 초순의 모락산 사인암 가는 길은 뜨겁다.
땀도 나고 걸음도 무거워져 점심 산책도 슬슬 꾀가 나는 계절인데, 그래도 밖에서 모임이
있다든지 하지 않으면 일주일에 두 번은 반바지로 갈아입고 팟캐스트 들으면서 올라갔다가
내려온다. 진달래 철쭉 지고난 다음엔 한동안 꽃소식이 없다가 얼마 전부터 국화과의
금계국이 피기 시작했다. 조금 있으면 마아가렛 닮은 개망초도 보일 것이다.
금계국 한 송이가 길가에 떨어졌는데 얼굴이 땅을 향해 있다. 가지에 붙어 있을 때는
당당히 꽃잎이 하늘을 향해 있었는데, 부는 바람에 조금 과하게 몸을 흔들어댔나 보다.^^
떨어질 때부터 그랬는지, 아니면 낙하산 타고 내리듯 사뿐히 안착했다가 뒤집혔는지는
알 수 없다. 문득 이 꽃이 그 동안 자신을 키워온 땅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저렇게
넙죽 절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땅에만 경의를 표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하나 더 있었다. 마치 헤어졌던 가족
만나듯 땅바닥과 진한 허그와 입맞춤을 하면서 그 동안 자신을 굳굳하게 지탱해 온 꽃받침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가지에 달려 있을 땐 어쩔 수 없이 혼자 각광을 받았지만, 이제 두루
고마운 인사를 하나 보다. 떨어져 뒤집힌 꽃이 마지막까지 아름다움을 지키고 있었다.
금계국 핀 등산로 (6/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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