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공동체
Posted 2009. 12. 22. 16:26, Filed under: I'm churching/House Church구체적인 방안보다는 생각할 꺼리를 제공하면서 이걸 기화로 소통이 일어나길 기대하며 썼다.
20주년 기념로고는 Forest님의 작품이다.
우리교회가 시작한 지 20년이 되려는 해를 앞두고 공간 문제가 수면 위로 부각됐다. 예배당 건물을 갖고 있지 않은 교회로선 부득불 언젠가 한 번은 올 일이었지만, 약간은 예상치 못한 시기에 찾아온 것 같다. 다행인 것은, 당장 뭐든지 어떻게 해야 하는 허둥댐을 모면하도록 일 년여 시간이 주어졌다는 점이다.
기도와 회의 그리고 의사소통
교회 공동체에 어떤 문제나 어려움이 찾아올 때 일반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나 자세는 일단 세 가지다. 1) 전 교인의 마음을 모은 기도 2) 당회를 중심으로 주요 리더십들의 회의 3) 교우들 간의 허심탄회한 의사소통과 토론이 그것이다. 기도만 하거나 회의만 하는 등 어느 하나에 치중하기보다는 적절히 균형을 이룰 때 좀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당회를 중심으로 긴박하게 대응책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분주해 보이는데, 이와 아울러 교회가 당면한 문제를 방관자가 아닌 교회의 구성원으로 중요한 결정권을 나눠 갖고 있는 교우들이 기꺼이 마음을 모아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단체적으로 경험하도록 수시로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고, 연령대나 성별, 직분을 막론하고 저마다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의견을 나누면서 중지를 모아야 할 때이다.
다양한 배경에서 함께 모인 교회
시각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교회는 구성원들이 대개 다른 교회를 모교회로 하고 있다. 20년이 채 안 된 연륜 때문에도 그러하지만, 일반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한국교회 상황이 좀 더 건강한 교회, 좀 더 좋은 교회, 좀 더 민주적인 교회, 좀 더 교회다운 교회를 찾게 만드는 가운데 비교적 안심하고 정착할 만한 교회의 특성을 갖춘 우리교회로 찾아오게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어렸을 때부터 자란 교회가 아니라 성인이 되어 모인 교회는, 그러니까 이 교회에서 신앙의 잔뼈가 굵은 게 아니라 이미 모교회나 다른 교회를 통해 신앙생활을 하다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옮겨 온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구태의연한 전통이나 인간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단조롭지 않고 비교적 여유가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동시에 태생적으로 다 제 소견에 옳은 대로 생각하기 쉬워 의견이 잘 모아지지 않고, 유사시 다소 흩어지기 쉬운 단점도 지닌 법이다. 물론 우리교회는 이런 기우나 노파심을 무색케 할 만큼 좋은 사람들이 모인 좋은 교회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은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런 교회관이 무리가 아니라면, 우리교회에 늘 필요한 것은 우리가 왜 함께 모이냐는 정체성과 무엇을 할 것이냐 하는 비전을 잘 다듬고 정리하며, 교육하고 훈련해 몸에 배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지도자들이 평소에 정체성과 비전(Identity & Vision) 확립과 계승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마음을 모은 성장도, 역량을 모은 하나 됨도 기대하기 어렵다. 성장의 열매와 하나 됨의 기쁨은 말로만 주어지거나 그저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변화되어 가는 구성원과 환경에 맞춰 적절하게 업데이트 시키는 일 또한 놓쳐서는 안 된다.
정체성이 확실한가
지난 20년간 교우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공감대가 형성된 우리교회 정체성은 아마도 학원교회와 가정교회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동안 교회 안에 많은 일이 있었고, 사람에 따라 다른 중요한 정체성을 들 수도 있겠지만, 이 둘이 우리교회를 지탱해 온 양대 기둥이라는 데에 대해서는 대개들 공감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면한 공간 문제 해결도 이런 정체성의 뿌리를 찾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우리교회를 찾아 와 정착한 교우들 상당수는 모르긴 해도 학원 안에 있고, 학원교회를 표방하는 우리교회 정체성이 맘에 들어 뿌리를 내린 경우가 많을 것이다. 20년 전, 벽돌에 투자하지 않고 사람에 투자한다는 교회 일반의 통념과 상식을 깨는 획기적인 창발성은 우리가 실제로 제대로 된 학원선교를 해왔느냐, 힘써 왔느냐와는 별개로 교우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 게 사실이다. 일각에서 (적극적인) 학원교회가 아니라 (단순히) 학원 안에 있는 교회라느니, 설립 비전 자체가 학원교회가 아니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20년 역사가 약간 허무해진다.^^
7년 전에 시작한 가정교회 운동은 어쩌면 교회의 체질을 뿌리부터 바꾸는 혁신적인 개념으로, 도입과 훈련 그리고 시행과 정착 과정에서 적잖은 긴장과 갈등이 있긴 했어도,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우리교회를 가정교회화한 교회로 불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지금 가정교회 없는, 가정교회를 하지 않는 우리교회는 생각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일각에서 여긴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라든지, 가정교회 하기 전과 지금의 교세가 별 차이가 없다면서 가정교회 무용론이나 부실론을 제기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체제에서 가정교회 아닌 다른 대안을 꿈꾸는 건 별로 현실적이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정체성으로 내세우고 자부하는 이 두 가지가 시행 과정에서 제대로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해 왔고, 그나마 서로가 연결되어 시너지 효과를 내기보다는 각각 따로 진행하려는 성향과 흐름을 보여 왔다는 것이다. 둘 다 완전히 몰입해 하는 게 아니라 어정쩡한 상태로 추구하다 보니 세월의 흐름에 걸맞는 열매가 아쉬워진다.
비전이 뚜렷한가
올 한 해 20주년사 준비위원과 기획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느낀 점은, 그래도 과거 20년에 대해서는 다들 할 말이 있고 보람도 느끼지만, 앞으로 20년을 어떻게 펼쳐갈 것인가에 이르면 다들 막막하고 애매모호하고 불투명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비전이 없거나 불확실하다고 망하는 건 아니지만, 뚜렷한 비전을 바라보며 성큼성큼 발걸음을 내딛는 것과, 안개 속에 지루한 소모전을 반복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우리교회에 비전이 없는 건 아닐 것이다. “제자 되고 제자 삼는 생명의 공동체”가 지난 10년의 비전이었듯이 앞으로도 유지 발전될 비전일 것이다. 그런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과연 무엇이고, 교회 구성원들은 다들 깊이 공감하면서 공유하는 비전일지 약간의 의문이 생긴다.
여기서 말하는 제자 됨(Discipleship)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함축하는 걸까? 복음서와 사도행전 그리고 서신서들에 나오는 제자들의 성품과 사람됨을 우리는 충실하게 연구하고 저마다의 삶의 현장에서 기꺼이 살아내도록 돕고 있는가? 매주 만나는 목장 모임이 제자의 삶을 나누면서 서로 돌보고 세우는 장이 되고 있는가?
제자 삼는 일(Disciple Making)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재생산을 통해 주님의 지상명령에 참여하는 제자의 삶을 살아낸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데, 이런 사역을 위해 우리는 제대로 된 교육과 충분한 훈련 기회를 제공하는 걸까? 그저 가정교회를 열심히 하고, 목자가 되면 이 비전이 이루어지는 것일까?
생명의 공동체가 담아내고자 하는 구체적인 지향점은 무엇인가? 목장 잘 참석하고 예배 잘 드리고 봉사에 참여하는 걸 말하는 걸까? 단지 생명을 가진 지체들이 한 시공간에 모인 외형적인 공동체로만 아니라, 생명력 넘치는 지체들이 초대교회와 같은 서로서로 의식을 공유하는 공동체로 모여 한 몸을 이루면서 함께 자라가고 있는 걸까?
공간이냐 공동체냐
20년 전 우리교회를 시작할 때 어떤 교회를 만들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구성원들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공간 문제를 푸는 원동력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앞으로 새로운 20년을 어떤 교회로 만들어 나갈 것인가를 서로 묻고 생각을 나누고 함께 기도할 때 당면한 공간 문제는 다음 다음 문제가 되고, 넉넉히 그리고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문제로 치부할 수 있지 않을까.
공간 문제 자체의 해법을 찾는 것은 비록 시급하고 절실한 과제이기는 해도 근원적 해결방안은 아니다. 공동체의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 나가면서 구성원 모두가 한 마음으로 공감대를 이루며 달려 나갈 수 있는 비전을 도출해 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20주년을 앞두고 지도자들과 구성원들이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함께 풀어나가야 할 숨어 있는 과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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