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한낮산책풍경
Posted 2014. 8. 17.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여름철 한낮 산책은 쉽지 않다.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 속에 산길을 걸어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건 누가 봐도 부자연스럽고 귀찮고 꾀가 절로 나는 일이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꼭 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두 번 가끔 의지적으로 하다 보면
나름 적응이 되고 재미도 살살 생기니 신기한 일이다.
등산로에 들어서기 전 높다란 아파트 담벼락과 작은 공원 사이에 난 길은 한낮인데도
어두워 보일 때가 많다. 봄이면 작고 화사한 벚꽃잎들이, 요즘 같은 여름철엔 비 온 뒤의
나뭇잎들이, 가을엔 곱게 물든 낙엽들이 바람결에 나뒹굴고, 겨울철엔 눈이 쌓여 얼음길을
만들기도 하는 등 사철 소소한 풍경 변화로 심심하지 않은 길이다.
등산로가 시작되는 초입 담벼락은 다른 계절엔 무덤덤한 회색이다가 나무와 풀이 무성한
여름엔 제 세상을 만난 이끼가 원래부터 투 톤이었다는 듯이 녹색 칠을 해 놓는다. 담벼락
가운데도 궁합이 더 잘 맞는 데는 오밀조밀 좀 더 밀집해 모여 있고, 잘 안 맞는 데는 듬성듬성
시늉만 냈다. 이끼가 아예 없던 계절에 비하자면 여름철 담벽은 때 빼고 광 내는 시절이다.
숲길에 들어서면 키 큰 나무들 사이로 햇빛이 들어오는 곳과 안 들어오는 곳이 나뉜다.
걷기는 물론 햇빛이 덜 드는 길이 분위기도 차분하고 수월하지만, 나무 틈 사이로 삐죽 햇빛이
드러나는 곳도 크게 불편하진 않다. 외려 능선이 점점 가까워진다는 신호이기도 하고,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도토리 같은 걸 쉬 눈에 띄게 하기도 한다.
아직 밤송이나 도토리가 익어 떨어질 시기가 아닌데도 태풍이나 장마는 성급한 탈주,
아니 낙하를 부추긴다. 올해는 추석이 한참 빨라서인지 예년보다 훨씬 많은 도토리들이
채 익지 않은 채로 서둘러 땅 위에 떨어져 있다. 누가 도토리 아니랄까봐 표면이 매끈하고
알이 곱다. 얼떨결에 떨어져 내리긴 했는데, 아직 분리되지 않고 세월을 보내는 녀석들도
있다. 형제였는지, 연인이었던지 떨어지지 않고 둘이 꼭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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