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 가자미 식해
Posted 2014. 10. 10.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百味百想
하남 I/C에서 팔당대교 방향 첫 번째 골목인 검단산 호국사 쪽으로 우회전하면 주택가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는데, 얼마 안 가서 가자미 식해란 작은 펼침막이 걸려 있는 집이 보인다. 붙어 있는 뒷집 앞뒤 미닫이 유리창문에 가게 이름을 커다랗게 썬팅해 놓았는데, 식당은 아니고, 함경도 북청식 가자미 식해를 파는 곳이다.
가자미 식해는 대중적인 음식도 아니고, 마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음식도 아니어서 이름을 알거나 들어본 이도 많지 않지만, 맛을 봤거나 아는 이들 사이엔 이북식 먹거리 가운데 하나로 사랑 받고 있다. 서울 토박이인 내 입맛에도 잘 맞는데, 게장과 식해 사이에 고르라면 잠시 망설여질 정도로 매력 있는 음식의 하나다.
식해는 우리가 마시는 식혜(食醯)가 아니고 한자로 食醢라고 쓰는데(한자가 어렵고 얼핏 보면 같아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다르다), 생선을 버무리거나 절인 이북식 먹거리다. 여기에 쓰는 가자미는 뼈째 먹기 때문에 커다란 건 안 되고 손바닥만하거나 좀더 작은 것들이다. 가자미에 차조와 무를 넣고 고추가루, 마늘, 생강, 소금간을 한 다음 숙성시키는데, 짭짤하면서도 물을 들이킬 정도로 짜진 않고, 비린 맛도 전혀 안 나 밥 반찬으로 딱이다.
함경도에서 속초에 피난 온 사람들이 만들기 시작해 알려졌는데, 가게를 지키는 할머니 말씀으로는 서울 근교엔 이 집만 있다고 한다. 서울 토박이가 어떻게 이런 음식을 알게 됐냐 하면, 오래 전 검단산 등산을 마치고 이 길로 내려온 적이 있는데, 그때 눈에 띄어 한 번 맛을 본 기억이 있었다. 두어 주 전 남한산성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불현듯 생각이 나서 혹시 아직도 있나 하고 가 봤더니 다행히 팔고 있었다.
가자미 16, 7마리가 빽빽하게 들어간 1.7kg 플라스틱 반찬통 한 통에 2만5천원을 받는데, 만원이 훌쩍 넘어 조금 작은 단위로 팔면 좋겠단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먹어 보면 본전 생각 안 나고, 한동안 다른 반찬 생각이 안 나니 투자할만 하다. 뚜껑을 열면 비닐에 차곡차곡 식해가 담겨 있는데, 모르고 보면 무슨 더덕 장아치인 줄 알겠다.^^
한 번 먹을 때마다 가자미 한 마리를 꺼내 작게 잘라 놓으면 도톰한 게 밥도둑이 따로 없다. 물론 적당히 짜기 때문에 한 번에 많이는 못 먹지만, 젓갈이나 게장과는 또 다른 씹는 맛과 풍미가 있다. 그냥 먹어도 좋지만, 참기름을 살짝 뿌려 먹으면 훨씬 고소하다. 고향이 이북인 분들은 반갑기 그지없는 맛에 환장하고, 나같이 먹기를 탐하는 이들은 끼니마다 침샘이 솟아나면서 환호할 음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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