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맛 끝내주는 촌닭불고기
Posted 2014. 12. 15.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百味百想매서운 추위가 계속되더니 급기야 아침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갔다. 이럴 때 생각나는 건 화끈한 불맛이다. 불같이 뜨겁거나 불같이 맵거나 문자 그대로 불맛이 나는 그런 맛 말이다. 내년 1월호 편집 마치느라 며칠을 야근해 다들 기운이 없던 차에 점심은 외식 - 대놓고 먹는 근처 식당 말고 차 타고 몇 분 가서 먹는^^ - 을 하기로 하고 메뉴를 고르랬더니 매운 맛 끝내주는 촌닭불고기 먹으러 가잔다.
연탄불에 구워 먹는 집인가 했는데, 그건 아니고 주방에서 잘 구운 닭불고기가 먹기 좋은 크기로 작게 썰려 숙주를 잔뜩 얹힌 불판 위에 산더미처럼 올려 나왔다. 먹기 전부터 탄성이 터지고, 스마트폰들 꺼내 찍느라 바쁘다. 대여섯 종류의 쌈채소와 밑반찬들은 식감을 자극하면서 웅크리고 있던 허기를 몰려들게 해 다들 젓가락질이 바빠진다.
조금 덜 맵게 헤 달랬는데도 매콤한 맛이 느껴지면서 다들 혀가 얼얼해지고 콧등에 살짝들 땀이 배기 시작한다. 돼지고기 제육을 콩나물에 얹어 먹는 집들은 여럿 봤는데, 닭불고기를 숙주에 얹는 집은 처음이다. 맵지만 끊을 수 없는 맛, 괜찮은 조합이었다. 쌈채소와 된장찌개 그리고 맨밥으로는 도무지 가셔지지 않는 매운 불맛에 혀에서 불이 나기 시작했다. 얼마쯤 먹으니 바닥에 자작한 국물이 고여 있었다.
이열치열이라고, 이럴 땐 정공법이 상책이다. 혀에서 불은 나지만 쉴 틈을 주지 않고 정신없이 먹어댔다. 반공기쯤 먹은 다음에 좋은 머리를 굴려봤다.^^ 남은 쌈들을 손으로 썩썩 잘라 밥 위에 얹었다. 그리고 국물과 숙주, 닭불고기 몇 점을 얹은 다음 쓱쓱 비벼주었다. 지금까진 싸먹었으니까 이제부터는 비벼 먹는 신공법이다. 매워 보이는 양념과 녹색 채소에 흰 밥이 어울린 비주얼이 볼만 하다.
겨우 다 먹고나자 구운 가래떡과 매실차가 디저트로 나왔다. 다행이다. 꿀에 찍어 먹는 부드러운 가래떡이 매운 혀와 놀란 위를 다소 누그러뜨렸다. 디저트 포함 1인분에 만2천원 받는 것도 적절해 보인다. 보통 식당처럼 다양한 메뉴가 있진 않고, 2시간 전에 예약해야 하는 만7천원 받는 참숯통닭구이와 수제비, 묵무침, 해물파전이 다다.
백운호수를 끼고 가다가 의왕 오전동 가는 언덕길을 내려가 왼쪽으로 조금 더 가면 과천-의왕 고가도로 밑으로 백운산 초입과 오전 저수지가 나오는데, 맨끝에 있는 집이 도래샘이란 식당이다. 산골짜기 초입에 았지만, 평일 점심 시간에 예약 손님들이 많은 걸 보면 제법 알려진 집인 것 같았다. 요즘 같은 날씨에 먹을만한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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