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에도 얼지 않는 약수터
Posted 2014. 12. 28.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Joy of Discovery올 한 해 매주 한 번씩 한 일 가운데 하나는 동네 약수터에서 물 떠 오는 일이었다.
하남으로 이사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했으니 이 일도 근 20년이 됐다. 약수터는
처음엔 산골 골목에 있었는데 그 후 두어 번 자리를 옮겨 지금의 길가로 이전 설치된
지도 10년이 넘었다.
처음엔 수도꼭지도 없었고, 물 나오는 데도 하나밖에 없어 핫 타임에 가면 2, 30분은
물통을 놓고 서서 기다려야 했는데, 자리를 옮기면서 수도가 생기고, 저장 탱크를 설치하면서
수도꼭지도 네 개로 늘어 여유가 생겼다. 게다가 호스도 알맞은 크기로 잘라 끼어 놓아
물을 받기 편리하게 만들어 놓았다. 지금 있는 자리도 처음엔 옥외 시설이었는데,
유리 샤시문을 만들어 번듯한 실내 시설이 됐다.
사시사철 시원하고 맛있는 약수를 뿜어내 나를 비롯해 오가는 등산객들부터 동네
주민들에 이르기까지 이용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데, 문제는 요즘 같은 한겨울이 되면
밤새 자칫 얼기 쉽다는 거였다. 그래서 출입문을 닫으라느니, 수도꼭지를 완전히 잠그지
말라는 등 동파 주의 안내문도 써 붙여 물이 졸졸졸 흐르도록 하는 게 관례였다.
그래도 이런 공짜 시설엔 제 편의만 챙기는 웬수들이 있게 마련이라 제 볼 일만
보고는 꽉 잠그고 가서 한두 개는 얼어 붙게 만들기도 하고, 너무 많이 틀어놔서 얼지는
않아도 밤새 아까운 물이 줄줄이 흘러 내리는 안타까운 형국이 연출되곤 했었다.
그런데 궁즉통이라고, 얼마 전부터 수도꼭지에 붉은색 고무선이 감겨 있고 벽 사이로 난
구멍 속으로 연결돼 있는 게 보였다. 몇 번을 가면서도 뭔지 몰라 궁금했는데, 며칠 전 물을
뜨러 가서 다 받은 다음에 졸졸 흐르도록 살짝 틀어놨더니, 옆에 계신 분이 이제 열선을
묶어놔서 틀어놓지 않아도 된다고 귀띔해 주셨다.
누군가 수도꼭지에 열선을 묶어서 한겨울 밤중에도 얼어 붙지 않도록 해 놓은 것이다.
와, 누구의 아이디어이고, 누가 작업했는지는 몰라도 이 약수터를 이용하던 이들의 고민을
일거에 날려버리는 멋진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개인이 해 놓을 수도 있겠지만, 전기요금
등을 고려할 때 시나 동에서 해 놓은 것 같은데, 모처럼 세금을 제대로 쓰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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