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져도 괜찮아
Posted 2015. 2. 9.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행
오르막 산길을 헉헉 낑낑거리며 걷다 보면 나무 기둥을 땅에 박고 밧줄을 길게 설치해
놓은 구간들을 종종 만난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붙잡거나, 붙잡진 않더라도 존재만으로
의지가 되는데, 요즘은 나무 기둥 대신 쇠 기둥을 쓰면서 구멍 대신 고리를 달아 밧줄을
연결하는 곳들도 많이 생겼다. 한쪽이 바위 절벽 낭떠러지 같은 데선 꼭 붙잡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로프 구간이 주는 시각적 안도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경사가 급한 곳들은 올라갈 때만 아니라 천천히 붙잡고 의지해 내려오는 데도 무척
요긴한데, 특히 요즘 같은 겨울철 눈길에선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등산 폴대를 짚거나
아이젠을 착용했어도 내려오는 탄력과 지친 발걸음이 자칫 넘어지게 할 수도 있는데,
밧줄을 붙잡고 걸음을 옮기면 한결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처음 설치됐을 땐 팽팽하던 밧줄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늘어지게 되고, 급기야
나무 기둥까지 흔들리게 하다가 시간이 좀더 지나면 기둥 뿌리가 뽑혀 겉으로 드러나게
되는 일이 생긴다. 혼자였더라면 아래로 굴러 떨어졌을 텐데, 위 아래로 밧줄이 연결된
덕분에 제자리에 혹은 조금 밀려 내려가 비스듬히 누운 자세를 취하고 있다.
물론 오래 이렇게 방치해 두면 보기도 안 좋거니와 멀쩡한 기둥들까지 영향을 받아
밧줄이 늘어지면서 엉망이 되고, 자칫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에 대개는 보수공사를
통해 새로 튼튼하게 박혀지곤 한다. 다행히 등산객이 조금 적은 편인 겨울철이라 망정이지,
봄여름가을 한창 때 이랬다면 말을 많이 들었을 것 같다. 괜찮다. 좋은 계절 한창 때
지탱하느라 수고했으니, 조금 넘어져 오수를 취하는 것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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