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없음 계단있음
Posted 2015. 2. 14.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행
산길 이정표들 가운데 사각 기둥으로 된 게 있는데, 등산로 주요 지점에 서 있어
현 위치를 비롯해 방향과 거리를 파악하는 데 아주 요긴한 정보를 담고 있다. 일종의
공식 안내판인 셈이어서 보는 순간 왈칵 반가움과 안도감이 느껴지는데, 재밌게도
어느 방향에서 보든 두 개씩 보이게끔 만들어져 있다.
예봉산 정상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서 있는 1.3 이정표는 정상으로 향하는 두 길이
나 있다고 안내하고 있었다. 직진해도 250m, 오른쪽으로 약간 우회해도 250m니 기분
내키는대로 아무쪽으로나 가면 된다. 그래서 올라갈 땐 직진해서, 내려올 땐 우회로를
택해 봤는데, 거리가 짧아서인지 별 차이를 못 느꼈다.
문제는 하산길인데, 같은 팔당1리 방향인데 계단이 있는 쪽은 2km, 없는 쪽은
2.3km로 3백 마터 차이가 있으니, 잘 결정해 내려가라는 것 같았다. 하산길에서
3백 미터는 사실 별 거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짧은 거리로 가고 싶은데,
세상에 쉬운 일 없고, 거저 되는 일 없다고 복병이 있었다. 계단의 존재다.
게다가 두 번에 걸쳐 나 있는 이 계단 구간은 2백 개가 족히 넘어 올라갈 때도
턱턱 숨이 차 한두 번 쉬다 다시 오르게 만들지만, 지친 상태로 내려올 때도 다리를
후덜거리게 만드는 게 만만치 않다. 보통은 하산길에 만나는 계단이 관절에 안 좋다는
이유로 계단 없는 길을 선호하지만, 사실 계단 구간이 아니더라도 하산길 자체가
터덜거리게 하므로 계단이 있더라도 짧은 길을 택하고픈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이리로 가자니 이런 문제가 있고, 그렇다고 저리로 가면 또 저런 문제가 있다.
어쩌란 말이냐! 별 수 없다. 그때 그때 몸이 향하는 대로 맡기면 속 편하다. 모르는
길도 아니고, 대단한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느 쪽으로 내려가든 그 나름의
의미가 있을 걸로 여기면 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