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준비
Posted 2015. 3. 20.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
산길 초입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텃밭이 있다. 계원대와 아파트 단지 사이로 난
경사진 등산로 옆이라 개인 소유는 아닌 것 같고, 뭘 설치하기도 애매해 그저 경작금지란
팻말만 세워놓고 노는 땅이다. 그리 강하게 단속하지도 않는데다, 멀쩡한 땅 그냥
놀리는 게 마뜩찮은 동네분들이 소일거리로 쉬엄쉬엄 텃밭을 일구어 놓았다.
점심 산책길에 보니 지난 가을 배추와 상추를 거둔 뒤로는 아무 것도 없이 돌만
나뒹굴던 텃밭을 슬슬 가꾸는 분이 보였다. 집에서 들고 온 욕실 깔판을 놓고 앉아
작은 호미로 흙을 파내며 돌맹이를 골라 밭을 가는 것 같았다. 얼른 한 장 찍고는 사인암에
올라갔다가 보통 때완 달리 계원대 후문 방향으로 돌아 내려오지 않고 올라간 길을
도로 내려왔다.
사십여 분 사이에 땅이 어떻게 일구어졌는지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새 텃밭을
일구던 분은 안 계시고, 대신 땅이 가지런히 정돈돼 있었다. 점심을 드시러 가신 겐지,
오후엔 다른 스케줄이 있거나, 아니면 딱히 바쁠 건 없더라도 전업농도 아니고 며칠 나눠
시간 보내기도 좋은 도시 텃밭에서 오늘일은 여기까지였던 모양이다.^^ 하루 이틀 지나면
씨를 심고 그 옆에 해 놓은 것처럼 비닐을 덮고 사방을 돌로 눌러 놓을 것이다.
얼마 안 지나면 기온이 점점 올라가면서 비닐을 뚫고 상추와 고추 등이 올라오고,
그 옆에선 봄꽃들도 피어나기 시작할 것이다. 가을철 배추를 거둘 때까지 이런저런
씨를 심어 계절의 변화 만큼이나 주변 풍경도 바꿔 놓을 것인데, 겨우내 기다리다가
때가 되자 땅을 갈고 밭을 일구기 시작하는 이분들 덕에 봄이 당겨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