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운명
Posted 2015. 3. 21.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산길을 다니다 보면 아름드리 큰 나무들인데도 꺾여 쓰러져 있거나 베어진 나무들을
보게 된다. 태풍이나 심한 비바람에 못 버텨 뿌리째 뽑히거나 쓰러진 나무들도 있지만,
어떤 나무들은 가지가 너무 기울었다든지, 등하산길에 걸림이 된다든지 해서 둥걸만
남기고 패버리는 경우가 있다.
모락산 사인암 올라가는 길에 다 자란 나무들 가운데 아랫쪽을 도끼로 패서 표시를
해 놓은 나무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지면에서 한 뼘즘 되는 높이니까 2, 30cm쯤 되는
부위였는데, 한 바퀴 돌아가며 여러 번 도끼질을 해 놓았다. 큰 나무라 바로 쓰러질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누가 봐도 조만간 쓰러뜨릴 것처럼 보였다.
깊은 산중도 아니고 등산객들이 많이 다니는 길에 서 있는 나무라 쉬 눈에 띄는데
누가, 왜 이렇게 해 놓은 걸까? 등산객들의 통행에 지장을 주는 위치도 아니고, 병이
들었거나 해서 못 생긴 나무도 아니고, 땔감으로 쓸 정도의 허술한 나무도 아니고,
멀쩡해 보이는 나무 밑부분을 이렇게 해 놓은 데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잘은 몰라도 아마 주위의 다른 나무들을 더 잘 자라게 하려고 마치 가지치기하듯
잘라내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숲을 조성하는 조림(造林) 과정에선 그냥
놔 두었다가 일정 면적을 공유하는 나무들 가운데 일부를 벌목해 다른 나무들에게
좀 더 영양분이 공급되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읽었던 기억이 났다.
딱한 처지와 가혹한 운명에 놓인 나무 한 그루를 보면서 여러가지를 생각해 본다.
냉정하고 치열한 약육강식 적자생존 같은 경쟁과 자연원리도 생각이 들고, one for all
/all for one 같은 팀워크와 희생정신 같은 것도 유추해 볼 수 있었고, 우유부단함과
단호함 같은 성격이나 성품 같은 것도 그려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