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단에서 온 김동문 선교사
Posted 2010. 8. 4. 00:11, Filed under: I'm wandering/Joy of Discovery
선교한국(Mission Korea)대회가 열리고 있는 안산동산교회에서 김동문 선교사를 만났다.
내가 전에 편집하던 잡지의 장기 필자로 알고 지내다가 목장의 선교사로 후원해 오고 있다.
오후에 1층 로비에서 우연히 만나 한 시간 반 동안 교회 커피샵 하늘정원에서 밀린 얘기를
나누었다. 내가 몇 가지를 묻고, 주로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외대 아랍어과를 나온 김 선교사는 인터서브란 국제선교단체 선교사로 이집트를 거쳐
요르단에서만 11년 동안 중동과 이슬람 전문 저널리스트 선교사로 일해 왔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교회개척이나 신학교 교수 사역을 하는 가운데, 요르단 수도 암만에 베이스를
두고 중동 지역을 두루 다니면서 이슬람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 대한 글과 책을 쓰는 것이
그의 선교사역이었다.
목사 선교사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은 <한겨레 21>을 비롯해 일반 매체에 중동 관련
취재기를 싣는 저널리스트(특파원급의 전문위원)로 알고 있다. 모두들 비교적 손 쉽게
말발로 일하는 시대에 그는 글발로 겨우 겨우 일해 온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결코 짧지 않은 선교사 캐리어에 비해 번듯한 후원교회가 적다.
두바이와 시애틀에서 한 교회씩, 그리고 국내에선 두세 교회만이 그의 사역을
지속적으로 돕고 있을 뿐이다. 교회들이 요구하는 선교 보고(정기적으로 회심자 수를
보고하고, 개척한 교회에서 현지인들의 예배를 인도하는 장면을 담은 감동적인 동영상 등)를
과감히 거부하는 깡은 그를 지지하는 목회자들마저 난감하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4월 1일, 그는 결국 자신의 선교지에서 출국 조치 당했다. 오랫 동안 그의 사역을
관찰해 온 요르단 당국자에 의해 나가 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 동안 형성한 관계나 현지인
지인들의 도움으로 버틸 수도 있었지만 그를 난처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짐을 쌌다.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해서는 일단 너무 모르고, 몇 가지 근거 없는 정보로 두려움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이슬람 선교는 매파들이 주도해 왔다. 김 선교사 같은
비둘기파들이 전에 비해 조금씩 늘어가고 있어 반갑지만, 여전히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1년간 국내에 마물면서 다음 단계의 선교 사역을 모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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