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하늘 전선줄
Posted 2015. 11. 25.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잡동사니
군산 월명동 골목을 걷다가 보도 블럭을 낀 양쪽 집 담벼락 아래 화초가 길게 놓여
있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 폭이 제법 되는 게 여름엔 평상을 놓고 골목 여인네들의
수다 한마당이 되고, 가을이면 신문지나 비닐을 깔고선 고추며 곡식이나 채소를 길게
펴서 말리고, 꼬마 아이들은 공도 차며 뛰놀기 편해 보였다.
발품을 팔면 어디나 있을 법한 이렇다 할 특색이 없었을 보통 가정집 골목에 온기와
생기를 불어넣고 있는 게 둘이 있었다. 집안에 있지 않고 길가에 줄줄이 내놓은 커다란
화초 다라이들은 자칫 삭막하고 건조해 보일 수 있던 골목을 빛나게 만들었으며, 뒤로는
지은 지 얼마 안돼 보이는 교회당이 보여 잠깐이나마 약간의 성스러움까지 느끼게 만들었다.
약간 쌀쌀했지만 화창한 날씨였는데, 이 고요하고 안온해 보이는 평화를 시샘하듯
오른쪽에서 거의 45도 각도로 얼추 30여 가닥은 돼 보이는 전선줄들이 빗줄기처럼 내려
쏟아지고 있었다. 공중에 거미줄처럼 쳐 있는 전선줄은 평소엔 위를 바라볼 일이 별로
없어 의식할 일이 거의 없는데, 이렇게 화창한 날 하늘을 바라보노라면 문득 존재를
드러내는 친구들이다.
어디서 나온 건가 살펴 보니, 골목 입구 한쪽에 서 있는 상당히 키가 큰 전봇대에서
사방팔방으로 내보내기도 하고 받아들이기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전봇대는 전깃줄의
중간 경유지인 셈인데, 가까이 가서 고개를 들고 쳐다보니 약간 현기증이 날 정도로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었다.
평소엔 왜 이들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했을까. 아마도 요즘은 아파트를 지으면서 전선은
지하에 매설하는 바람에 이리 복잡해 보이는 전깃줄은 시골이나 오래되고 작은 도시 주택가나
가야 볼 수 있지 싶었다. 물론 이 골목 풍경의 또 다른 일등 공신은 맑은 하늘이었다. 흐리고
우중충한 날이었다면 자칫 단조롭고 심심해 보여 무심코 지나쳤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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