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의 정리
Posted 2016. 7. 1.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잡동사니
지닌주 금요일 퇴근하고 저녁을 먹은 다음 소파에 앉아 야구중계를 보려는데, 베란다 한쪽에
작은 상자 몇 개가 놓여 있는 게 보였다. 이어서 아내의 나즈막하면서 동시에 엄중한 한 마디가
들렸다. 주말에 정리해 놓으라는. 대여섯 개의 상자엔 수백 개의 카세트 테이프와 비디오 테이프들이
들어 있었는데, 80년대부터 모아두었던 설교와 강의 테이프와 인터뷰 자료들이 대부분이었다.
주말엔 손도 안 대고 버티다가^^ 그 다음주 어느 저녁날 버릴 것과 둘 것을 분류했다.
예전 같으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절대로 버리려 하지 않았을 나름대로 중요한 자료들이었지만,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을 버리는 쪽으로 정리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카세트 테이프와
비디오 테이프를 재생할 수 있는 기기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집 오디오는 아직 테이프를
재생할 수 있고, 뒤져보면 집안 어느 구석엔가 워크맨이 남아 있어 고집을 부리며 버틸 수 있었지만,
이미 스스로도 다시는 재생하지 않을 거랄 걸 알기에 기꺼이 쓰레기 봉투 속에 집어 넣었다.
그래도 도저히 버리기 아까운 것 몇 개는 추억으로라도 써 먹으려고 남겨두었는데, 막상 언제
다시 들어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번에 정리한 건 앞 베란다 구석에 쌓아두었던 것들이고,
뒷 베란다와 다른 방에 있는 것들이 곧 2차 정리 대상으로 나오고, 그 다음엔 박스에 넣어두고 내내
안 꺼내보는 케케묵은 옛날 책들이 3차 구조조정 대상으로 나올 것 같다. 한 집에 너무 오래 살고
이사가지 않았기 때문인가. 한 시대가 이렇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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