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들도 수고했다
Posted 2017. 11. 3.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모락산 등산로 초입에 있는 작은 텃밭들이 올해도 농사가 잘 돼 배추와 무며, 고추와 상추며 가지
등을 풍성히 맺었다. 봄 여름을 지나 가을에 이르도록 씨를 뿌리고 가꿔 온 주인에게 수확의 기쁨을 줄 뿐
아니라. 매주 지나다니며 바라보던 등산객들의 발걸음도 가볍게 만들어 주고 있다. 때가 되면 자연히
이런 순간이 오는 거겠지 했는데, 텃밭들마다 한쪽 구석을 지키고 있는 각양 각색의 물통들을 보면서
또 다른 비밀의 순간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동네 짜투리 텃밭에 앉아 있는 물통들은 희한하게도 같은 게 하나도 없었다. 플라스틱 빠께스부터
철통, 물뿌리개, 생수통까지 그야말로 집에서 노는 물통들은 다 동원된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올해도
비가 충분히 내리진 않아 물을 가져와서 밭에 물을 대는 일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 저 물통들이
주인과 함께 고단한 수고를 감당했던 모양이다. 거꾸로 내걸린 긴 장화와 방충망도 한여름 노동의
고됨에서 해방돼 두 발 들고 쉬고 있었다.
옆집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았는데, 가득 채워왔을 약수통들이며 뚜껑 없는 커다란 주전자에
플라스틱 대야까지 집안살림이 다 나왔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옆으로 길게 누워 있는 플라스틱 소주병인데,
도수도 높고, 소주병치곤 엄청 큰 댓병이지만, 담금소주란 이름으로 볼 때 매실주 등 과실주를 담글 때
들이붓던 걸 빈 물병으로 요긴하게 사용한 게 아닌가 싶다. 하여튼 네들도 수고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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