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지 나는 포즈
Posted 2010. 1. 17. 22:07, Filed under: I'm wandering/Joy of Discovery
작년에 어쩌다 보니 서울 근교에 있는 산 8개를 올랐는데, 올해엔 10-15개를 올랐으면 하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1월도 중순, 늘 오르던 검단산과 모락산을 벗어나지 못해 슬슬 초조해 하고 있는데,
dong님 부부가 버스 타고 선자령에 가려는데 동행하겠느냐고 물어왔다.
우리가 함께 가면 버스보다 차 한 대로 가는 방법도 있다며, 더욱 솔깃한 제안도 곁들였다.
Why Not?
아니 갈 이유, 안 따라나설 이유 전혀 없었다.
선자령 길은 등산보다는 산책이 더 잘 어울리는 완만한 능선의 연속이었다.
주차하고 출발한 옛 대관령 휴게소가 이미 840m 고지여서 해발 고도로는 300m 남짓 올라간 셈인데다가,
dong님 부부는 각각 니콘 D700과 D70으로 오르내리는 내내 풍경과 사물과 눈을 맞추면서 셔터를 눌러대는,
그야말로 유유자적 노마드다운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 빠르거나 서둘러 다니진 않아도 이 정도로 여유만만한 산행에 별로 익숙하지 않은 우리 사람,
중간에 서 있고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땀도 식고 약간 추위도 느껴지면서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할 때,
마침 올라갈 때완 다른 코스로 택한 길이 이 모든 것을 보상해 줄 만큼 쌓인 눈과 눈부시게 맑은 하늘과 나무와 풍경으로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 주었다.
어찌어찌해서 예상했던 것보다 한두 시간 정도 더 걸려 차 세워둔 곳에 내려오니 4시 반쯤.
하남까진 두 시간 반 정도 예상되는 딱 좋은 시간인데, dong님이 한술 더 뜬다: "우리 진부로 해서 오대산 좀 보고 갈까요?"
오잉~ 이거 무슨 황당하고 못 말리는 시튜에이션.
우리 사람, 이 정도면 됐고, 서둘러 집에 가 맛있는 거 사 먹으면서 여행 뒷담화나 나누면 딱 좋아 보이는데,
해는 지고 나서 30분 정도가 사진 찍기 정말 좋다면서 꼬셔오다니. 이분들, 정말 못 말리는 강적들이다.
오대산은 다음에 좀 더 일찍 출발해서 제대로 보자면서, 핸들 잡고 있는 사람 맘대로 고속도로를 내쳐 달렸다.
다음에 이 부부와 동행하면 좀 더 느긋하게 맘먹고, 어쩌면 자정이나 돼야 돌아올 각오를 해 두어야 할 것 같다.
사진은 하산길에 털모자와 장갑, 배낭에서 포스가 느껴지는 dong님의 간지 나는 포즈와 그 그림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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