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이 만든 돈부리
Posted 2011. 12. 16.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Kiwi NewZealand
green grocer에서 커피를 마신 다음 흑회색 해변으로 유명한 무리와이(Muriwai) 해안공원을 잠시 거닐었다. 무리와이는 오크랜드 다운타운에서 차로 40분 정도 걸리는 서쪽 해안인데, 오클랜드 근교 여행에서 빠뜨릴 수 없는 바다와 넓은 모래밭 그리고 트레킹 코스가 잘 갖춰진 곳이었다. 잠깐 해변을 거닐어도 되지만, 멀리 보이는 트레킹 코스를 걸으며 새도 보고, 다양한 해양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멋진 곳이었다.
그러나 날씨가 받쳐주질 않았다. 흩뿌려대는 비바람은 약간 을씨년스러웠고, 저녁시간이 가까워 오면서 그마나 몇 안 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해 멀리서 잔잔하게 밀려오는 파도로 해변은 적막감마저 느껴졌다.
정서상으로나 바이오 리듬으로나 서둘러 주차장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바다를 좋아하는 로즈마리가 운동화와 양말을 벗고 맨발로 해변을 걷기 시작했다. 날씨완 상관없이 바다와 풍경은 우리의 대화를 깊고 넓게 이어가게 만든다. 5분도 못 있을 것 같았는데 30분 남짓 머문 것 같다. 눈에 담아두고 날 좋을 때 다시 와서 트레킹하고 싶은 장소로 점찍어 두었다.
저녁을 어디서 먹을까 고민하다가 해인이 갑작스레 집에서 간단히 음식 해 먹으면 어떻겠느냐고 물어왔다. 이미 내게 해인의 솜씨를 들어 알고 있는 로즈매리는 그러면 좋긴 하지만, 번거로울 것 같다며 사양했고, 난 그거 좋지, 하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콜!을 외쳐 2:1로 집에서의 간단 만찬으로 결론 짓고, 노스셔에 있는 해인네 집으로 달려갔다.
사실 같은 시간 혜민과 경재네 집에서는 남은 강사들과 스탭들을 위해 월남쌈이 준비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식사 후에 폴모와 함께 2시간 거리의 해밀턴으로 내려가기로 돼 있어 우리끼리 식사하는 게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식사 후엔 J K Tiger 집에 잠깐 들려 차를 마시기로 약속이 돼 있었다.
해인이 우리를 위해 준비한 음식은 돈부리. 1인용 돌솥에 밥을 담고 야채와 김치 그리고 길게 썰은 스테이크를 얹어 몇 분간 익힌 다음 내는 덮밥이다. 다른 재료는 집에 있는 걸 쓰고 동네에 있는 이름도 재밌는 미친 푸줏간(Mad Butcher) - 이 집 사진을 못 찍었다 - 에서 스테이크용 고기와 대파 - 반 단 정도밖에 안 되는 게 NZ $3나 받았다 - 만 사 오면 됐다.
해인은 자취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지 웬만한 음식은 뚝딱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요리를 잘하기도 했지만, 재료와 조리 순서를 머릿속으로 착착 계산해 큰 오차 없이 시도하는 것 같았다. 써 놓고 보니 그게 그 말이 됐다.^^ 어쨌든 재료를 가지런히 펼쳐놓고 다듬는 저 뒷모습만 봐도 어떤 음식이 생산될지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양쪽으로 난 주방의 넓은 창은 채광이 잘 되고 보기에도 좋았다.
일인당 손바닥만한 크기 한 조각씩 스테이크용 고기를 알맞게 구운 다음 적당한 굵기로 길게 썰어 밥 위에 얹은 다음 몇 분간 솥째 익히면 되는 이 메뉴는 요리 시작 30분쯤 지난 후에 가볍게 완성되는 일품요리였다.
어떻게 총각들 사는 집에 이런 1인용 돌솥이 몇 개 있는지 모르겠지만, 밥상에 올려놓으니 과연 어떤 음식이며, 어떤 맛일지 로즈마리와 궁금증과 기대감 만발. 뚜껑을 열고 숟가락으로 쓱쓱 비비니, 먹음직스런 돈부리 완성. 있는 재료로 뚝딱 만든 것이기에 깊은맛까진 아니었어도 집밥 먹는 삼삼한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음~ 여기서 작은 고민이 하나 슬그머니 생긴다. 저 재주가 더 깊어지고 다양해지도록 Single Life 기간을 좀 더 누리는 게 좋을지, 아니면 다른 레시피나 메뉴 개발은 안 해도 좋으니 속히 좋은 자매 만나서 해 주는(?) 밥 먹으면서 가끔 이렇게 실력 발휘하는 게 나을지, 어떤 게 해인에게 정말 좋은 길인지 구분이 잘 안 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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