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좀 쉬어야겠군
Posted 2015. 9. 13.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
처음엔 거울처럼 보이다가 이내 숨어 있는 초승달로 변하더니 위에서 내려다 보니
고장난 나침반이 됐다. 모락산 사인암 가는 등산로 초입에 묻혀 있는 쇠 파이프 이야기다.
등산로가 되기 전에 계원대와 반도아파트 단지를 가로지르는 낮은 언덕을 만드는
공사 펜스로 박아놨던 게 이후에도 몇 개 남아 있는 모양이다.
그 중 하나가 흙으로 반쯤 채워 있다가 빗물을 담는 그릇이 돼 거울과 초승달과
나침반 이미지까지 연출한 것이다. 비어 있던 파이프에 처음엔 흙이 쌓이더니, 나뭇가지
하나가 굴러 들어오고, 빗물까지 기웃거리다가 어느 플라뇌르(flẚneurs, 불어로 정수복이
『파리를 생각한다』에서 여유 있게 배회하는 산책자란 의미로 썼다. 이 블로그 타이틀
Pedestrian도 같은 의미이다.)의 눈에 이런 저런 모양으로 들어 온 것이다.
보통은 흙으로만 채워 있는데, 공사가 끝나고 대부분 뽑아냈지만 미처 제거하지
않은 다섯 개가 숨쉬기 운동하듯 고개만 살짝 들고 일정 간격으로 남아 있다. 어찌 보면
물 위는 아니지만 잠수함이 주위를 살피는 잠망경 같아 보이기도 한다.
무심코 걷다 보면 발에 걸리기도 하는데, 그리 위험하진 않아 그냥 두고 있는 것 같다.
언덕 위 길가에 돌출돼 있어 얼핏 보면 위험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자주 걷다 보니
어느새 얘들도 친구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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