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려도
Posted 2011. 5. 22.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I'm a pedestrian하루 종일 흐리다 비가 오다를 반복했다. 새벽까지 비가 내려 오전에
가면 비를 안 맞고 산에 갔다 올 수 있겠는데, 10시부터 하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가 호주 멜본 편을 한다길래 놓칠 수 없어 점심 먹고 1시 반쯤에야
집을 나섰다.
십중팔구 중간에 비가 올 게 뻔해 이단 우산 하나를 넣어 갔다. 아닌 게
아니라, 예봉산 입구에 차를 대고 배낭을 매자마자 비가 조금씩 뿌려댄다.
아직 자리를 차릴 실력은 안 되지만, 많이 올 비는 아니었다. 우산을 펴서
살짝 뒤로 제낀 채로 터벅터벅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뭘 하든 약간의 장비는 필요한 법인데, 아직 나는 우중 산행 장비를
구비하진 않고 있다. 우비나 판초 스타일이 필요할지, 아니면 아주 가벼운
바람막이 겸용 겉옷에 우산이면 될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특유의 귀차니즘으로
이런 걸 사러 가는 게 번거롭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후두둑 비가 뿌려대다가 그치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습기를 머금은
신록이 동행을 자처한다. 오늘 따라 산은 온통 초록과 짙은 갈색뿐이다.
산에 안 와 본 이들은 오늘 같은 날 방콕을 선호하겠지만, 초보 산행객 티를
이제 막 벗어나고 있는 나같은 이들에겐 산을 찾기 딱 좋은 날씨였다.
율리고개에서 벚나무 쉼터 지나 율리봉으로 오르는 길에 뒤를 돌아보니
직녀봉이 단아한 자태로 서 있고, 검단산은 구름에 가려 있다. 다녀본 산을
내려다 보는 기분은 복합적이다. 친숙한 마음에 반갑기도 하지만, 아직 속속들이
다니진 못했다는 약간의 도전의식과 호기심도 생긴다.
가끔 전망 좋은 경치나 장면을 만날 때 여기서 사진을 찍을지, 아니면
앞에 보이는 봉우리에 올라 좀 더 좋은 전망을 확보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되는데, 많은 경우 지금 이 순간에 셔터를 누르는 게, 아니 눌러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조금 더 높은 데 위치하면 더 시원한 풍경을 보여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꼭 높은 데 있다고 전망이 좋은 건 아니다. 그렇다면 이것도 카르페 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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