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P 나들목교회
Posted 2010. 10. 5. 00:05, Filed under: I'm churching/교회 나들이'I'm churching > 교회 나들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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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느 마을에 살던 농부 하나가 산 넘고 강 건너 먼 마을로 유람을 떠났다.
이른 나이에 마을 지도자가 된 농부는 산천경치 다르고 물 다른 곳에 머물면서 이것저것
구경하는 동안 그 마을이 썩 마음에 들었다. 겉으로 봐선 이렇다 할 특색이 없는 마을이었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혈색이 좋고 친절해 농부는 짧은 기간 머무는 동안 어느새 마을의 물색에
흠뻑 반해 버렸다. 농부는 그 마을의 촌장을 찾아가 대화를 나누면서 그 비결 중 하나가
생전 처음 맛본 귤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자기 마을에선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오륀지 귤은 적당히 달기도 하고 시기도 하고
씹으면 물도 많이 나와 농부는 이번 기회에 종자를 얻어가 자기 마을에 보급하고픈
마음이 생겼다. 다행히 귤 농장의 촌장은 후덕하고 지혜로워서 먼 데서 와서 자기 마을에서도
귤 농사를 한 번 해 보겠다는 젊은 농부를 기특하게 여기면서 손수 비법을 전수해 주고,
마을의 다른 농부들과 함께 전폭 지원하겠노란 언질도 주었다.
잘 익은 귤과 종자를 품에 안고 싱글벙글 의기양양 자기 마을로 돌아온 농부는
가까이 지내던 이웃을 불러 귤 맛을 보게 한 후 우리 마을에서도 귤 농사를 한 번
해 보자고 설득했다.
그 마을은 전통적인 벼농사를 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과수원을 할 만한 풍토도
아니었다. 물도 다르고 기후가 달라 거기처럼 귤이 잘 나겠는가 하는 우려도 있었고,
귤 농사를 하게 되더라도 모든 농가가 한꺼번에 하기보다는 일단 시범적으로 몇 집이 해본
다음에 결과를 보고 마을 전체로 확대하자는 말도 있었지만, 귤 맛에 흠뻑 취한 농부가
이전과는 다르게 자신 있게 나오고 새로운 걸 한 번 해 보자는 용기가 갸륵해 보여
큰 고민 없이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과일이라곤 사과와 배밖에 모르던 마을에서 귤 맛을 본 이십여 농부들이 함께
해 보겠다고 나서 사사절(四四節)에 드디어 밭을 갈고 고이 가져 온 종자를 심으면서
귤 농사를 시작했다. 농부는 이참에 마을 이름도 바꾸자면서 귤 마을이란 약간 우스꽝스런
이름을 마을 입구에 크게 써 붙였다.
워낙 뭔가를 새로 해본 적이 없는 조용한 마을에서 귤 농사는 마을의 분위기를
일신하면서 착착 퍼져 갔다. 원조 귤 농부 격인 촌장도 몇 차례 방문해 격려하고
지원하면서 첫 한두 해는 기대했던 이상의 소출을 거둘 수 있었다. 귤 농사를 도입한
농부는 으쓱해졌고, 곧 이웃 마을들에 소문이 나기 시작해 자천타천으로 귤 전도사가
되기에 이르렀다.
농부는 앞뒤 계산을 치밀하게 하는 이가 아니어서 일단 귤 농사를 시작하면
다 잘 될 줄 알고 밀어붙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불철주야
귤 농사를 독려해야 할 농부 자신은 직접 귤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 딴 사람들에게만
열심히 하라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세 해쯤 되기 시작했을 때, 마을 사람들 사이에 이상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귤이 처음 맛본 것과 색깔과 당도에서 차이가 나기 시작하고, 너무 신 맛이
강해 못 먹게 되는 무늬만 귤이 나오기 시작하고, 추수철이 됐는데도 노랗게 되기는커녕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시든 귤 나무가 속속 나오게 된 것이다.
그 동안 워낙 마을 분위기가 귤 농사 일변도라 불만을 꺼낼 수 없던 이들 가운데
몇몇은 한밤중에 짐을 싸 소리 소문 없이 다른 마을로 옮기기에 이르렀고, 사람들은
대의를 위해 안타깝지만 쉬쉬 하고 넘어가 주었다. 귤 전도사 농부는 이런 사람들을 두고
중이 절이 싫으면 떠나야지, 하면서 애써 모른 척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귤 농사를 함께 시작한 농부들은 종자나 농법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며 당신이 도입했으니 어떻게 문제점을 개선해 보라고 촉구했지만, 이미 귤 전도사로
각광 받기에 이른 농부에겐 쇠귀에 경 읽기였다. 그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책을 마련해
보자는 농부들의 간절한 열망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 네들이 열심히 안 하는 탓이다,
내가 본 귤 농장 사람들은 달랐다는 말과 함께 차일피일 미루기 일쑤였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눈 딱 감고 삼 년만 귤 농사를 전력을 다해 해 보자는
농부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마을 사람들은 삼 년이 지나고, 오 년이 지났지만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농부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극에 달하기에 이르렀다.
이젠 귤 농사만 아니라 농부가 하는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수 없다는
냉소적인 기류를 형성하면서, 애시당초 호미로 막을 수 있던 일을 이젠 가래로도
막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급기야 귤 농사가 도입된 지 오 년이 지나면서 귤 나무에는 이상한 열매가 맺히기
시작했는데, 맛을 본 이들은 모두들 떫어하고 지독한 신 맛에 퉤퉤 뱉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에 이르렀다. 마을 원로들은 이 열매가 처음엔 귤이었는데, 황하를 건너오면서
탱자가 됐다고 하면서 원래 농사는 기후와 풍토가 맞아야 하는 법이라며 혀를 끌끌 찼다.
귤 마을은 귤 농사를 도입한 지 칠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귤이다 탱자다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고, 귤 농사에 학을 떼고 넌저리가 난 농부들 가운데는 이젠 귤의 ㄱ자만 나와도
치를 떠는 지경에 이르렀다. 개중엔 아예 귤농사를 하지 않는 다른 마을로 집단 이주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이들도 생겼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쉽사리 옮기기 어려운 사람들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면서 세월만 축내는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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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예배 후 열린 사랑방 모임에 참석한 후 내용을 정리해 어제 교회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다른 글과는 달리 내 생각을 담기보다는 그 날 있었던 대화의 흐름을
정리하는 형식을 취했다. 그래도 내 관점에서 정리한 것이어서 다른 참석자들이
볼 때 온도 차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은 당회(또는 담임목사)의 일 처리 방식이 마음에 안 들어 내 생각을 두 페이지에
질문 형식으로 준비했으나, 다른 때와는 달리 교우들의 의견 제시가 비교적 활발해서
간단히 의견을 피력하는 수준에서 발언을 마쳤다.
이번 예배당 이전 문제는 우리 부부에게도 많은 대화를 하게 만들고, 금년 안에
어떤 결정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조심스럽지만 나누고 있다. 아직 소망을 접어야
할 결정적인 문제들이 생긴 것도 아니고, 몇 가지 변수가 남아 있지만. 우리에게도
앞으로 몇 달은 정말 중요하다.
주일 오후 유치부실에서 열린 예배당 이전을 위한 사랑방 모임은 60여 명의 교우들이
참석한 가운데 2시간 30분이 넘도록 진지하면서도 활기찬 대화 모임으로 이어졌다.
최근에 유력한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장소에 대한 당회 서기의 비교적 상세한
브리핑에 이어 교우들의 자유 발언과 질문에 대한 당회원들의 답변과 설명이
오가면서 차분한 가운데서도 시종 열기를 띠었다.
당회의 설명에 대해 참석자들의 특별한 이견이나 별다른 저항(?)이 없었을 경우,
당회는 그 방향으로 추진해 나갈 것으로 보였는데, 브리핑 자료에는 향후 추진과정이
다음과 같이 순차적으로 정리돼 있었다:
1차 : 전교인 다락방 모임, 여론 수렴
2차 : 확대 당회 의결(전교인 기도회)
3차 : 전교인 공동의회 의결
4차 : 이전 추진위원회 결성 및 이전 준비
5차 : 이전 시기 결정(전교인 기도회)
6차 : 이전할 곳 시설 개보수 공사
7차 : 한영학원과의 관계정리
8차 : 이전(가을/봄 이전 목표?)
이번 사랑방 모임의 하이라이트는 그 동안 제직회 등 회의에 많이 참석하지 않고
발언도 거의 없었던 3, 40대 젊은 교우들, 그것도 여성 교우들이 예배당 이전과 관련한
현안 이슈에 주일학교 예배공간과 시설 문제를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함으로써
밑바닥 여론이랄까 정서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었던 점이다.
한편 일부 교우들은 구체적인 장소 선정에 앞서 교회가 나아갈 큰 방향 설정이
우선돼야 하며, 분립 개척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개진했는데, 어제 모임의
이슈에 충실하자는 이유에서 더 논의되진 않았다.
그보다는 현 단계 우리 교회 교우들의 필요와 수준에서 볼 때 학교 이외의 기관으로
이전할 경우,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이용공간에서 섬김의 장소로, 교회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가는 것에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가는 것 등)를 수용할 만큼 우리 교회의
영적 체력이 준비돼 있느냐는 근원적인 의문에 많은 참석자들이 공감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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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내가 다니는 교회는 설립 20주년을 맞았다. 평소에도 워낙 행사와 담쌓고 지내는
교회인지라 별 기대 없이 가서 예배에 참석했는데, 끝나고 점심시간에 달랑 빵봉지 하나와
귤 하나를 받았다.
빵 봉지에는 20주년 기념 로고가 들어간 기념빵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교회 인근
쇼핑센타에서 파는 카스테라를 그냥 주기가 뭐했던지 스티커를 붙였는데, 기왕이면 별 관계
없는 쇼핑센타 이름 위에 붙일 것이지, 마치 거기서 제공한 것처럼 되고 말았다. 빵꾸똥꾸다.
몇 주 전 담임목사가 주보에 쓰는 목회자 코너란 칼럼에 앞으로 주일날 교회에선 떡을 배달시켜
먹지 말자는 아닌 밤중에 빵봉지 터지는 소리 비슷한 글이 실린 적이 있었다. 사연인즉슨, 주중에
자녀의 결혼이나 부모의 상을 당한 교우들이 축하나 위로차 격려해 준 교우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주일점심식사에 떡을 내는 훈훈한 관례가 있었는데, 이 떡 상자를 주일 아침에 배달하는 사람들이
교회 때문에 교회 나가지 못한다는 듯한 논리였다.
일면 일리가 있어 보였고, 꼭 떡을 안 먹어도 될 일이지만, 하고 많은 이슈 중에 떡 배달 시키지
말라는 걸 칼럼에 쓸 정도로 거슬린 일이었는지 약간 씁쓸했다. 빵꾸똥꾸다.
그래서 한 교우는 인절미나 절편 같은 떡 대신에 코스트코의 대형 머핀을 제공했고, 권사님들은
쇼핑센타 로고를 그대로 살리고 20주년 로고를 붙인 웃기는 카스테라 봉지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빵 부스러기들이 바닥에 떨어지고, 반쯤 먹다 만 머핀들이 돌아다니고, 어쩌다
빵봉지가 바닥에 굴러다니게 된 것이다.
오후에 열린 제직회에서 한 분이 주일학교 일부 아이들이 빵봉지를 운동장에 버려 안타깝다며
빵봉지를 줍자는 또 다른 빵봉지 터지는 제안을 했는데, 사회를 보던 담임목사가 좋은 의견이라면서
제직들 반은 운동장, 반은 동산의 빵봉지를 줍자는 바람에 제직회 끝나고 다들 빵봉지 줍고 가야 했다.
갑작스런 청소를 해서가 아니라, 20주년 맞은 날에 할 일이 그렇게도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빵꾸똥꾸다.
오늘부터 한달간 (2) | 2010.06.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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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금요일 밤부터 토요일 점심때까지 교회 기획위원회 밤샘회의가 포천 서운동산에서 있었다. 새벽 4시까지 장장 7시간에 걸친 난상토론을 마치고, 서너 시간 눈을 붙인 다음 아점을 먹고 토요일 오는 길에 그 근처에 잘 지어진 전원교회가 있다길래 위원들과 한시간 정도 둘러봤다.
전원교회라길래 100여 명 모이는 하얀색의 소박한 경량구조 건축물이겠거니 하고 갔는데, 어라! 예배당과 숙소, 운동장과 작은 공원이 완비되고, 뒷편엔 숲길로 이어지는 제대로 된 꽤 큰 전원교회길래 요즘 교회 공간 문제로 마음이 급하던 터에 다들 입이 딱 벌어졌다.
다양한 이름을 단 구내 이정표는 이 교회당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파스텔톤의 교회당은 높은 첨탑과 함께 탐날 만큼 멋지게 지어져 있었다. 얼핏 봐선 미국 교회처럼 보인다. 밖에서 대충 봐도 몇 백 명은 수용할 만한 규모였다. 근데, 곰곰 생각해 보니, 이 건물 웬지 낯설지가 않다. 어디서 본 것 같아 기억을 되살려 보는데, 그래, 데자뷰! 대여섯 해 전 당시 김용태 목사가 강의해 달라고 했던 청년부 수련회가 열렸던 곳이었구먼. 그때만 해도 파워포인트를 할 줄 몰라, 강의안을 아래한글로 작성해 그걸 스크린에 키워가면서 강의하곤 했었지.^^
토요일 점심땐데도 내일 또는 조만간 있을 행사를 위해 연습하는 친구들이 예배당에 나와 있었다. 방송용 키다리 이동 카메라가 설치된 걸로 봐, 이 방면의 교우가 있나 보다. 네들은 좋겠구나. 강대상을 치운 강단 전면은 넓고 탁 트인 무대가 되어 객석 어디서나 회중에게 잘 보이는 구조다. 전체적으로 밝고 안정된 원목 컬러가 공간을 따뜻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천장 조명도 정겹고, 무엇보다 높은 천장은 공명이 잘돼 여기서 부르는 모든 노래는 천상의 메아리로 들릴 것 같다.
교회 옆에는 겉으로 봐선 수양관이나 유스호스텔 비스무리하게 지어진 3층 짜리 숙소동이 있었는데, 듣자니 교인들이 와서 쉬다가 주일을 보낸다고도 한다. 농구코트도 있고, 1층 한 구석을 카페로 사용하고 있었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인테리어에 신경쓴 흔적이 역력한데, 아무렇게나 배열하지 않은 포근하고 화사한 실내 분위기가 지친 손님들을 넉넉히 맞아준다. 거기다가 이 카페의 매니저이신듯한(^^) 예수님의 웃는 초상화와 잘 어울리는 시편 한 구절. 좋구먼! 반말투만 아니면 더 좋았을 텐데.^^ (참고로 우리말 성경은 열이면 아홉 예수님의 말씀을 반말투로 번역하고 있다. 그래서 김규항은 마가복음을 강독한 <예수전>(돌베개, 2009) 본문으로 카톨릭의 200주년 신약성서를 택했다. 이 성서에서만 예수가 반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테이블도 같은 게 하나 없고, 편한 의자와 쿠션들도 각각 잘 어울리게 디스플레이해 놨다. 촌스럽게 테이블만 잔뜩 늘어놓지 않고 선반과 화초, 책장 등으로 다양하게 꾸며 놓아 자주, 편하게 들락날락하라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그래, 이런 교회 다니는 이들은 주일마다 신나겠구나.
차 값도 싸고 맛있다. 눌러 내린 개인용 커피와 국산차 모두 3천원이고 단팥죽도 있다. 차를 시키면 가벼운 쿠키 몇 개도 함께 내온다. 무엇보다도 이 카페의 서비스 정신을 느끼게 하는 건, 각자 알아서 먹도록 식빵과 토스터기를 구비해 놓고 쨈까지 발라 먹게 하는 놀라운 친절이다.
교회가 모름지기 이쯤은 돼야 하지 않겠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카페였다. 실제 교회 운영이나 교우 구성원들이 어떤지는 몰라도, 적어도 교회당과 카페 모양만 봐도 이 교회 사람들의 체온이 느껴지고, 친절과 관용이 전달되는 인상적인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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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가 되면 교회들은 저마다 특새를 하느라 분주하다. 일주일은 기본이고, 두 주나 세 주에
걸쳐 하는 교회도 꽤 눈에 띈다. 새해 벽두를 중시하는 분위기는 교회라고 예외가 아니어서 전에도
연초가 되면 특별새벽기도회를 하는 교회들이 없었던 건 아니었으나, 요즘처럼 특새가 유행이
된 것은 연중 퍼레이드 식 새벽기도로 유명한 명성교회와 몇 해 전 외부 강사들을 초대해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인 사랑의교회에서 히트를 친 다음부터이다.
우리교회도 이 흐름에서 예외는 아니어서, 서너 해 전부터 연초 한 주간을 특새 주간으로
광고하고, 열심히들 모여 기도하는 것 같다. 월요일부터 몰아닥친 한파와 기록적인 폭설이
무색할 정도로 연일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마지막날인 토요일 새벽엔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가득 차 무슨 주일예배에 온 것 같기도 했다. 우리에게도 이런 간절함이
있었구나 하는 공감대가 서로의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든 것 같다.
우리교회의 특새는 조금 특이한 것이, 해마다 책 한 권을 선정해 그 책을 요약 설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조엘 오스틴의 <긍정의 힘>, 릭 워렌의 <회복으로 가는 길>, 이재철의
<회복의 목회> 등에 이어 올해는 강준민의 <위기를 극복하는 바라봄의 능력>이 텍스트북으로
선정됐다. 연초부터 책도 읽고, 거기에 기대어 기도도 하는 나름대로 신선한 기획으로 받아들여진다.
오스틴의 책을 빼곤 나름대로 좋은 책들인데, 문제는 인도 방식이다. 우선 매일 새벽 시간에
다루기엔 조금 길게 느껴지는 A4 앞뒤 한 장 분량의 프린트물은 성경을 읽는 것도, 그렇다고 저자의
핵심 사상을 짚어주는 것도 아니어서 조금 지루하게 느껴진다. 요점만 두어 군데 짚어주면서
저자가 다루고자 하는 내용을 한두 가지 질문 형식으로 던져주면 하루 종일 곰곰 떠올리면서
기도제목으로 삼을 수 있을 텐데, 너무 많은 분량은 새벽부터 생각을 복잡하게 만든다.
그리고 기도제목을 주면서 합심기도를 요청할 때도 설명이 긴 편이라, 듣다 보면 기도할
포인트를 놓칠 때가 종종 생긴다. 그냥 쉽게 한 제목씩 기도하게 하면 좋을 텐데, '세 가지'
기도제목을 주기 때문에 세 가지 다 제대로 못 구할 때가 많이 생긴다.^^
여기에 올해는 우리가 즐참하기 조금 곤란한 상황이 하나 더 생겼는데, 세겹줄 기도회라
해서 미리 세 명이 한 조를 이뤄 서로의 기도제목을 나누고 매일 같이 기도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애시당초 이 방식이 별로 땡기지 않던 우리는 세겹줄 파트너를 미리 만들지 않았고, 초반 사흘을
건너뛰고 출석 도장 찍듯 목, 토 이틀만 참석하면서 특새 순서 후반부의 세겹줄 기도시간에는
서둘러 나와야 하는 다소 민망한 상황을 맞게 됐다.
아마도 내 영성 가운데 가장 취약한 부분이 기도임은 내남이 크게 부인하지 않는 것이지만,
그래도 요즘과 같은 '묻지마 따지지마 그냥해' 특새 열풍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모름지기 새벽에 하는 기도라면 말씀과 찬송, 기도 순서 등에서 좀 더 새벽적인 정서를
자극하면서 기도의 품에 얼굴을 묻고 꿈같은 시간을 보내게 할 순 정녕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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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회의 그리고 의사소통
교회 공동체에 어떤 문제나 어려움이 찾아올 때 일반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나 자세는 일단 세 가지다. 1) 전 교인의 마음을 모은 기도 2) 당회를 중심으로 주요 리더십들의 회의 3) 교우들 간의 허심탄회한 의사소통과 토론이 그것이다. 기도만 하거나 회의만 하는 등 어느 하나에 치중하기보다는 적절히 균형을 이룰 때 좀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당회를 중심으로 긴박하게 대응책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분주해 보이는데, 이와 아울러 교회가 당면한 문제를 방관자가 아닌 교회의 구성원으로 중요한 결정권을 나눠 갖고 있는 교우들이 기꺼이 마음을 모아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단체적으로 경험하도록 수시로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고, 연령대나 성별, 직분을 막론하고 저마다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의견을 나누면서 중지를 모아야 할 때이다.
다양한 배경에서 함께 모인 교회
시각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교회는 구성원들이 대개 다른 교회를 모교회로 하고 있다. 20년이 채 안 된 연륜 때문에도 그러하지만, 일반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한국교회 상황이 좀 더 건강한 교회, 좀 더 좋은 교회, 좀 더 민주적인 교회, 좀 더 교회다운 교회를 찾게 만드는 가운데 비교적 안심하고 정착할 만한 교회의 특성을 갖춘 우리교회로 찾아오게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어렸을 때부터 자란 교회가 아니라 성인이 되어 모인 교회는, 그러니까 이 교회에서 신앙의 잔뼈가 굵은 게 아니라 이미 모교회나 다른 교회를 통해 신앙생활을 하다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옮겨 온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구태의연한 전통이나 인간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단조롭지 않고 비교적 여유가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동시에 태생적으로 다 제 소견에 옳은 대로 생각하기 쉬워 의견이 잘 모아지지 않고, 유사시 다소 흩어지기 쉬운 단점도 지닌 법이다. 물론 우리교회는 이런 기우나 노파심을 무색케 할 만큼 좋은 사람들이 모인 좋은 교회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은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만약 이런 교회관이 무리가 아니라면, 우리교회에 늘 필요한 것은 우리가 왜 함께 모이냐는 정체성과 무엇을 할 것이냐 하는 비전을 잘 다듬고 정리하며, 교육하고 훈련해 몸에 배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지도자들이 평소에 정체성과 비전(Identity & Vision) 확립과 계승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면 마음을 모은 성장도, 역량을 모은 하나 됨도 기대하기 어렵다. 성장의 열매와 하나 됨의 기쁨은 말로만 주어지거나 그저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변화되어 가는 구성원과 환경에 맞춰 적절하게 업데이트 시키는 일 또한 놓쳐서는 안 된다.
정체성이 확실한가
지난 20년간 교우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공감대가 형성된 우리교회 정체성은 아마도 학원교회와 가정교회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동안 교회 안에 많은 일이 있었고, 사람에 따라 다른 중요한 정체성을 들 수도 있겠지만, 이 둘이 우리교회를 지탱해 온 양대 기둥이라는 데에 대해서는 대개들 공감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면한 공간 문제 해결도 이런 정체성의 뿌리를 찾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우리교회를 찾아 와 정착한 교우들 상당수는 모르긴 해도 학원 안에 있고, 학원교회를 표방하는 우리교회 정체성이 맘에 들어 뿌리를 내린 경우가 많을 것이다. 20년 전, 벽돌에 투자하지 않고 사람에 투자한다는 교회 일반의 통념과 상식을 깨는 획기적인 창발성은 우리가 실제로 제대로 된 학원선교를 해왔느냐, 힘써 왔느냐와는 별개로 교우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 게 사실이다. 일각에서 (적극적인) 학원교회가 아니라 (단순히) 학원 안에 있는 교회라느니, 설립 비전 자체가 학원교회가 아니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20년 역사가 약간 허무해진다.^^
7년 전에 시작한 가정교회 운동은 어쩌면 교회의 체질을 뿌리부터 바꾸는 혁신적인 개념으로, 도입과 훈련 그리고 시행과 정착 과정에서 적잖은 긴장과 갈등이 있긴 했어도,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우리교회를 가정교회화한 교회로 불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지금 가정교회 없는, 가정교회를 하지 않는 우리교회는 생각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일각에서 여긴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라든지, 가정교회 하기 전과 지금의 교세가 별 차이가 없다면서 가정교회 무용론이나 부실론을 제기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체제에서 가정교회 아닌 다른 대안을 꿈꾸는 건 별로 현실적이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정체성으로 내세우고 자부하는 이 두 가지가 시행 과정에서 제대로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해 왔고, 그나마 서로가 연결되어 시너지 효과를 내기보다는 각각 따로 진행하려는 성향과 흐름을 보여 왔다는 것이다. 둘 다 완전히 몰입해 하는 게 아니라 어정쩡한 상태로 추구하다 보니 세월의 흐름에 걸맞는 열매가 아쉬워진다.
비전이 뚜렷한가
올 한 해 20주년사 준비위원과 기획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느낀 점은, 그래도 과거 20년에 대해서는 다들 할 말이 있고 보람도 느끼지만, 앞으로 20년을 어떻게 펼쳐갈 것인가에 이르면 다들 막막하고 애매모호하고 불투명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비전이 없거나 불확실하다고 망하는 건 아니지만, 뚜렷한 비전을 바라보며 성큼성큼 발걸음을 내딛는 것과, 안개 속에 지루한 소모전을 반복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우리교회에 비전이 없는 건 아닐 것이다. “제자 되고 제자 삼는 생명의 공동체”가 지난 10년의 비전이었듯이 앞으로도 유지 발전될 비전일 것이다. 그런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과연 무엇이고, 교회 구성원들은 다들 깊이 공감하면서 공유하는 비전일지 약간의 의문이 생긴다.
여기서 말하는 제자 됨(Discipleship)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함축하는 걸까? 복음서와 사도행전 그리고 서신서들에 나오는 제자들의 성품과 사람됨을 우리는 충실하게 연구하고 저마다의 삶의 현장에서 기꺼이 살아내도록 돕고 있는가? 매주 만나는 목장 모임이 제자의 삶을 나누면서 서로 돌보고 세우는 장이 되고 있는가?
제자 삼는 일(Disciple Making)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재생산을 통해 주님의 지상명령에 참여하는 제자의 삶을 살아낸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데, 이런 사역을 위해 우리는 제대로 된 교육과 충분한 훈련 기회를 제공하는 걸까? 그저 가정교회를 열심히 하고, 목자가 되면 이 비전이 이루어지는 것일까?
생명의 공동체가 담아내고자 하는 구체적인 지향점은 무엇인가? 목장 잘 참석하고 예배 잘 드리고 봉사에 참여하는 걸 말하는 걸까? 단지 생명을 가진 지체들이 한 시공간에 모인 외형적인 공동체로만 아니라, 생명력 넘치는 지체들이 초대교회와 같은 서로서로 의식을 공유하는 공동체로 모여 한 몸을 이루면서 함께 자라가고 있는 걸까?
공간이냐 공동체냐
20년 전 우리교회를 시작할 때 어떤 교회를 만들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구성원들 사이에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공간 문제를 푸는 원동력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앞으로 새로운 20년을 어떤 교회로 만들어 나갈 것인가를 서로 묻고 생각을 나누고 함께 기도할 때 당면한 공간 문제는 다음 다음 문제가 되고, 넉넉히 그리고 기꺼이 감당할 수 있는 문제로 치부할 수 있지 않을까.
공간 문제 자체의 해법을 찾는 것은 비록 시급하고 절실한 과제이기는 해도 근원적 해결방안은 아니다. 공동체의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 나가면서 구성원 모두가 한 마음으로 공감대를 이루며 달려 나갈 수 있는 비전을 도출해 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20주년을 앞두고 지도자들과 구성원들이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함께 풀어나가야 할 숨어 있는 과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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