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분한 사랑
Posted 2010. 12. 7. 07:33, Filed under: I'm churching/House Church
어제 저녁엔 다니던 교회의 기획위원회 위원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7시 반에 식당에
모여 11시까지 긴 시간을 함께 했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도 아닌데, 보쌈 고기만 앞에
놓고 이런저런 교회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회포를 풀었다.
기획위원회의 간사 격인 기획부장으로 있던 사람이 함께 꿈꾸던 교회 개혁의 열망을
내려놓고 공동체를 떠난다고 하자 다들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우리가 함께 이야기
하며 꿈꾸던 것들이 쉽사리 실현되지 않으리란 건 다들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 가운데 이탈자가 생기리란 것, 그것도 핵심 멤버 중 하나가 뜻밖의 결정을 하게
되는 상황은 충격이었고 모두를 허탈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넜노라는 내 말에 아직 요단 강을 건넌 건 아니잖냐는 재치로
맞받으면서,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한 달 아니 몇 달이라도 기도할 것이고, 두 주 간격으로
이런 모임을 가지면서 결심을 무력화시키겠노라는 조금 부담스런 어필도 있었다.
10시 넘어 거의 모임이 끝나갈 무렵, 한 분의 제의로 나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를
나누는 시간을 다시 갖게 됐다. 본인이 있는 자리에서 다 큰 선후배 동년배 남성들에게서
이런 사랑 고백 듣는 게 무지 어색하고 부담스러웠지만, 이 나눔은 한 사람당 몇 분씩
이어지면서 이 날 모임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 서 집사 부부를 처음 봤을 때 어디서 본듯한 인상이었다. 그만큼 익숙했고 마음이
맞고 스타일이 비슷해 교제하기 편했다. 정 떠나려거든 혼자 가고 박 집사는 두고 가라.
동역하는 즐거움이 컸다. 여러 난관이 있긴 해도 우리가 꿈꾸고 나누던 것들의 실현이
그리 멀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함께 그 일을 해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 서 집사의 생각을 풀어놓기에 우리 교회가 좁긴 하겠지만, 그래도 서로 의지하던
사람들을 놓고 어딜 가려는가?
- 서 집사가 그 동안 이런저런 상처를 받는 걸 지켜보면서 진작에 좀 더 힘이 되어
주지 못한 게 후회된다. 공동체의 주인은 우리다. 우리가 떠나선 안 된다. 떠날 사람은
따로 있지 않은가?
- 마음 충분히 이해하니까, 얼마 동안 안식한다 생각하고 다른 데 둘러보다가 복귀해
함께하면 좋겠다. 서 집사 없으면 우리 모두 기획위원회 사표 낸다.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내 따위가 뭐라고 이들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우정을 나누며
사람을 난처하게 만든단 말인가. 표정 관리가 안 되고, 울컥해졌다. 마지막에 겨우
한 마디 하고 일어섰다.
- 잘 몰랐는데, 그 동안 과분한 사랑을 받아왔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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