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m와 180m
Posted 2010. 7. 29. 08:32,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행
7월 29일은 내 두 번째 생일이다. 2월생인데, 무슨 말이냐고? 38년 전, 그러니까 1972년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작은 형의 손에 이끌려 처음 교회에 나가게 됐다. 그것도 여름수련회에. 한 명씩 데려오라는 전도(배가) 목표를 이루지 못해 곤란해 하던 형은 뙤약볕 아래 운동장에서 공을 차며 놀고 있던 동생을 데리고 가는 것으로 면치레를 했다.
경기도 양평의 수입리 근방에서 열린 수련회에서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그 날 이후 난 교회에 나가게 됐고, 기독교인으로 손을 들게 됐고, 부모님의 우려 속에 큰 형님의 야단도 여러 번 맞았다. 소위 회심 체험 같은 건 특별히 없었지만, 대학 1학년 때 존 스토트(John Stott)를 읽으면서 내가 믿는 게 뭔지, 믿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게 되면서 교회에 나가는 사람(Churchian)에서 기독교인(Christian)이 되었다. 날이 날이다 보니 잠시 옛 생각이 났다.
요즘의 점심 산행은 무더위와 높은 습도로 시작하기 전에 꾀가 난다. 횟수를 줄이거나 코스를 단축하는 게 좋겠단 생각을 하면서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사인암(25분)에 오른 후 절터 약수터(5분)에서 찬물에 팔과 얼굴을 씻는 맛을 놓칠 수 없어 근근이 하고 있다.
사인암메서 절터 약수터로 내려가는 길에 서 있는 이정표는 80m로 새겨져 있는데 누군가 앞자리에 숫자 1을 매직으로 써 넣어 180m를 가리키고 있다. 산에 다니다 보면 남은 거리를 보여주는 이정표만큼 반가운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산에서의 거리 측정은 직선 거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람마다 제각각일 수 있는 가는 방식과 거리 감각을 다 살릴 수도 없어 대강 평균거리쯤 될 거라 짐작되는데, 그래도 80m와 180m는 상당한 차이다.
실제로 가 보니, 180m에 가까운 것 같았다. 80m인 줄 알고 갔다가 나오지 않자 뿔이 난 어느 등산객이 되돌아와서 고쳐 적은 것이다. 덕분에 그 후 나를 포함해 약수터에 가려는 사람들은 200m만 가면 되는군 하는 느긋한 맘으로 힘을 낼 수 있게 됐다.
얼마 전부터 산 초입의 이정표를 산뜻하게 새로 단장했다. 컬러풀해지고, 이런저런 정보도 늘었다. 중턱의 약수터 이정표도 새옷으로 갈아입힐지 모르겠지만, 그땐 80m가 아닌 180m로 제대로 표시해 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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