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주 은하
Posted 2013. 8. 22. 00:00, Filed under: I'm churching/더불어 함께지난 주 금요일부터 사흘간 천안에서 교회 수련회가 있었다. 풀참은 못하고 토요일 새벽에 내려가서 오후까지 하루 맛만 보고 올라왔다. 오후에 13개의 선택식 특강 중 하나를 한 다음에 역시 <진격의 연애>란 재밌는 제목의 강의를 하러 내려 온 용주를 오랜만에 만났다(내 강의도 제목은 재밌는데, <미생의 장그래는 어떻게 좋은 글을 쓰게 됐나>였다^^). 마침 카페에서 은하와 대화 중이어서 자연스럽게 이들의 대화 테이블에 끼게 됐다.
용주는 현대자동차에서 설계를 맡고 있는 엔지니어로 어느새 과장급 3년차가 됐다고 한다. 학생 때부터 복상을 출입하면서 발송도 돕고 연재글도 쓰는 등 독자 이상의 활약을 했다. 공대생치고는 웬만한 인문계 출신들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독서와 고민에서 우러나온 예리한 글로 일찍부터 필명을 날렸다. 젊은 복음주의자들 가운데 흔치 않은 사상가적 면모를 지녔는데, 이런 쪽으로는 역시 공대 출신의 청어람 양희송 대표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은하(요즘은 가일로 알려져 있다)는 국문학을 전공한 학교 후배로 기연(기독인연합) 활동을 하다가 복상 사무실을 찾아오면서 알게 됐고, 그 후 2003년 이라크전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자 거의 단신으로 요르단을 거쳐 이라크에 들어갔고, 백일 넘게 반전 평화운동을 벌였다. 최근에도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설치 반대운동 등에도 참여했는데, 내가 교회를 옮기면서 같은 교회에 다닌다는 걸 알게 됐다. 작년 가을부터는 전공을 살려 새물결플러스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오른쪽은 역시 복상의 오랜 필진으로 활약해 온 인터서브의 김동문 선교사인데, 요르단에서 추방된 후 국내 사역을 하던 중 얼마 전부터는 같은 교회에서 선교 파트 사역자로 일하고 있다. 이들에게 나는 여전히 서 부장으로 불렸다. 예전의 직함으로 불린다는 건 그 시절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들과 만나고 알게된 게 10년이 훨씬 지났고, 그 동안 서로에게 많은 일과 이런저런 변화가 있었지만, 추억을 공유하는 만남은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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